Robert E Speer와 한국선교

 1  Robert E Speer와 한국선교-1
 2  Robert E Speer와 한국선교-2
 3  Robert E Speer와 한국선교-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Robert E Speer와 한국선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Robert E. Speer와 한국선교
1. 서론
한국기독교회사에서 Robert E. Speer(1867~1947)는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본부의 총무로서 한국선교와 관련하여 매우 비중있는 인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전무하다. 김승태, “미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총무 스피어의 한국선교지 방문 보고서(1897),”「한국기독교와 역사」제15호, 2001.에서 스피어에 관한 간략한 소개를 볼 수 있다.
그의 선임 총무 Frank F. Ellinwood는 중국에 있던 알렌을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여 파송하는 등 초기의 한국선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지만, 역시 한국교회와 관련한 구체적인 연구는 커녕 생몰연도 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승태박혜진 엮음,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241.
그의 후임 총무는 Arthur J. Brown(1856~1945)으로 일제하 한국교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연구도 대단히 미비한 실정이다. 한국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해외 선교본부와 관련된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 아직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Robert E. Speer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관련 사항들을 통해 Speer와 한국선교의 구체적인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물론 지금 작성중에 있는 박사학위논문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특히 한국선교에 있어서 보드와 미션 그리고 선교 스테이션의 관계를 진단하는 하나의 유효한 항목이 된다. 물론 더 나아가 Frank F. Ellinwood과 Arthur J. Brown에 대한 연구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한국선교와 관련하여 이 세 사람의 상호 관계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부분, 그리고 이들 각자가 내한 선교사들과 구체적으로 맺고 있는 관련성을 세밀하게 살피는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Robert E. Speer에 대한 연구는 미국에서의 학생자원운동이 해외선교 및 에큐메니칼 운동과 이어지는 구체적인 루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당시 세계적인 교회지도자들의 인맥과 그 흐름을 파악하는 일에 있어서도 많은 참고가 된다. 이는 결국 내한 선교사들의 배경의 일부를 살피는 일에 있어 매우 유효한 관점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 미국, 일본의 국제관계가 얽혀있는 선교 현장으로서 한국의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나 국무부 등 외교적 차원에서의 극동정책이나 한국이해가 아닌 미국교회 내 해외선교본부의 입장, 즉 미국교회의 국제정세를 판단하는 인식의 한 측면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하면 특정 시기의 한국관련 국제문제가 정치 외교적 차원에서만 다뤄지는 한계를 다소 극복하고 신학적 또는 교회적 정황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국제문제를살피는 하나의 준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정한 선교사업에 대해 선교현장에서 요청하는 바를 선교본부에서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선교현장에서 골몰하는 문제와 본부에서 고민하는 문제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핌으로서 한국교회의 역사가 선교현장의 일방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선교본국과의 쌍방적인 상호관련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찾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선교하는 측의 관점에서 다소 편파적으로 이해하는 문제와 한국적 상황의 문제를 강조하는 차원으로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는 또 다른 편파성을 해소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2.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본부와 Robert E. Speer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본부는 1837년 총회에 의해 설립되어 이전에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외 선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해외선교 활동은 그 이전에 이미 아프리카, 인도, 중국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본부는 1810년 회중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에 가입하여 연합으로 해외선교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831년 피츠버그 노회(Synod)에서 Western Foreign Missionary Society를 설립하면서 독자적으로 분리되었고 193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인도, 중국에서의 해외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37년 총회에 의해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본부가 창설되었다. Robert E. Speer, Presbyterian Foreign Missions: An Account of the Foreign Mission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 S. A.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and Sabbath-School Work, 1901), 12~13.
이와 같이 단일교파 조직으로 발전한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본부는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인해 남북 장로교회로 분리되었고 한국선교에 있어서도 각기 미국 북장로교와 남장로교가 따로 선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837년의 미국 장로교회 첫 해외선교본부 총무는 인도 선교사였던 John C. Lowrie였고 1891년까지 사역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F. F. Ellinwood가 1871년부터 사역하였다. Robert E. Speer, Presbyterian Foreign Missions: An Account of the Foreign Mission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 S. A., 15.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