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 저기요 할 말이 있는데요(요한복음 3장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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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문 - 저기요 할 말이 있는데요(요한복음 3장1-15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저기요 할 말이 있는데요?
요한복음 3:1-15
1. 도입
저는 오랜동안 선생이었던 사람입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다른 젊은 선생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공부할 만큼 공부했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고 또 필요한 부와 명예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고민이 하나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것을 나도 스스로 잘 모를 때가 있고 그리고 제가 가르치는 가르침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저는 완벽한 선생인데, 나 혼자 있게 될 때면 스스로 항상 고민이 됩니다. “내가 가르치는 가르침이 진정 살아서 내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삶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역사하는 가르침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곤 합니다. 물론 여전히 해답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던 중, 가르치는 말이 실제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또 기적도 행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는 한 젊은 선생이 마을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회당에서 가르칠 때 가까이 가서 그 젊은 선생이 가르치는 내용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가르침의 내용은 저의 가르침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선생은 그냥 말로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그런 엄청한 기적들을 매일매일 행하고 있으며 그러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선생을 매일같이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저도 그 선생이 궁금해졌고 또 실제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난 만인이 아는 선생인데 알려진지 얼마 안되는 젊은 선생한데 가서 가르침을 들어보고 질문도 해보고 하는 것이 멋적고 쪽 팔립니다. 혹 사람들이 내가 그 젊은 선생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무시를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게 될까봐 겁도 납니다. 더군다가 저의 동료들과 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젊은 선생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 젊은 선생이 신성한 성전에 들어가서 큰 물의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 선생이 보여주는 능력을 보고 그 젊을 선생을 께속 따른다고 하니 저는 이 젊은 선생을 더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여러분 제가 누군지 아시겠죠? 네 니고데모입니다. 그렇다면 능력있는 젊은 선생을 만나보고 싶은 저의 고민을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알고 계시죠?
2. 니고데모의 1인칭 고백
이미 소개했다시피 저는 니고데모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 중에서도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는 바리새인이며 또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젊은 선생에 대해 듣기 전까지는 나름대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만큼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 정통했으며 많은 다른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회당에서 강론을 하는 예수라는 그 젊은 선생을 봤는데요, 그는 우리 유대인 스승들 밑에서 따로 율법을 전수 받은 것도 아닌데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율법들을 다 알고 있었으며 그의 강론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감히 성전에 와서 우리 유대인들을 꾸짖고 기도의 집인 성전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꾸짖고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예수선생은 우리 유대인들은 생각조자 할 수 없었던 여러 기적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유대인 선생들 중 그런 능력을 보였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같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궁금하고 만나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왜냐면 전 하나님이 주신 율법책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 조상, 선지자들이 행했던 여러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없을 뿐더러 가까이서 그런 기적을 본적도 없기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선생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밤에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선생 예수와 나웠던 그 대화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맨 처음 예수 선생님을 만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제가 그 분께 얘기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이 많은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와는 다른 분 같습니다. 제 생각엔 선생님은 분명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니라면 그런 기적들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저희 조상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애굽땅 노예의 삶에서 구해 주실 때 행하셨던 여러 기적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이신게 틀립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선생님은 제가 한 말은 신경도 안쓰고 전혀 엉뚱한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 선생님이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순간 혼자 생각했죠,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볼 수 있다는 거지?”. 우리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마지막 날에 이 세상을 심판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이해되어져 왔을 뿐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형태를 갖는 나라가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하나님 나라’는 저를 포함한 모든 유대인들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궁금증을 참고 다시 물어볼 기회를 엿보고 있는 동안, 예수 선생님은 이어서 말하더군요. 물론 똑같이 ‘하나님 나라’에 관해 얘기를 하긴 했는데요, 이번엔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간 막막했습니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가?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미 성인이 되고도 한 참 나이가 들은 제가 다시 엄마 배속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해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선생님께 물어보기로 마음 속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처음엔 유대인의 선생이면서 그것도 모른다고 하면 쪽팔릴까봐 그냥 잠잠히 있을려고 했었는데 그래도 이 늦은 밤에 집까지 찾아왔는데 궁금한 것은 해결하고 가야한다고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언제 다시 예수 선생님 집에 올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 선생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저 처럼 늙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까?”하고 말입니다. 예수 선생님은 저의 질문을 듣고 처음에는 꾸짖지도 비웃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절히 대답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답이 무슨 말인지 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선생님의 대답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답은 ‘거듭나는 것’ 대신에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었습니다. 더 깊은 오리 무중에 빠졌읍니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하다가 구약성경에서 ‘물’과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곳을 봤던 기억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와 율법에서는 ‘물’이 ‘정화시킴, 깨끗이 씻음, 새롭게 함’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겔 36:24-27; 민19:17-20).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에서 ‘물로 태어난다’는 말은 ‘사람의 영혼이 깨끗하게 씻어지는 것,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구약시대에는 제한된 율법책에서만 성령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기때문에 곧 바로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가랴 선지자가 언급했던 성령의 역할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가랴 서에서는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 역시 ‘영혼이 깨끗하게, 또 새롭게 된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슥12:10-13:1).
예수 선생님은 율법선생인 제가 생각할 수 없었던 구약의 율법의 내용을 가지고 저의 궁금증을 풀어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물과 성령에 의해 영혼이 씻어지고 새로운 영을 받아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는 설명이 도무지 육신의 사고를 갖고 이해하는 사람의 지능으로만으로, 논리적인 연결고리고는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지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8절),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수도 없고 그것을 조작할 수는 없지만 바람이 부는 것으로 느끼는 그 경험, 즉 결과적인 경험, 증거들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성령에 의한 깨끗케 하심과 새로운 영을 주시는 거듭나게 하는 역사는 우리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의 지성과 노력으로 조작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증거들을 통해, 결국 성령이 존재하시고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선생님의 메시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이상해 여기면서 고민하지도 말고 그냥 인정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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