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 유홍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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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사]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 유홍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가톨릭사 연구사 - 유홍렬
한국가톨릭사 연구에 있어 달레, 최석우, 야나구치 마사유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이어 이번 연구사는 해방 후 한국가톨릭사를 통사서로 남긴 유홍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연구 과정도 마찬가지로 한국가톨릭사 서술의 시각을 4가지로 나누어서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신앙사적 시각, 두 번째 교회사적 시각, 세 번째 정치, 사회사적 시각, 네 번째 는 사상사, 문화사, 문명사적 시각이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서 유홍렬이 바라보는 한국가톨릭사를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았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 그의 통사론적 연구의 대표 책이라고 말 할 수 있는 『한국천주교회사 上, 下』를 중심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1. 유홍렬(1911-1995)의 생애
유홍렬은 1911년 경기 장단 (長湍)에서 양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그는 천주교를 잘 알지 못하였다. 16세 때(1926년)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의 인생관을 찾아다니며 힘쓰게 된다. 교회에도 가보고 목사님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는 1935년 경성제국대학의 사학과에 들어가게 되고, 조선 민속학 연구실의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 천주교를 만나게 되었다. 대학시절의 친구인 천주교 신자 서정덕을 만나서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25세 때 1936년 9월 25일 세례를 받게 되고 2개월 뒤에 서정덕의 누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밝혀지지 않고 있던 한국사를 한국인으로써 연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대한 의지는 그의 졸업 논문 에서 볼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 , 까지 발표하였다. 그의 열정의 시작은 1938년 2월 라리보(A. Laibeau)주교를 만나고 나서 한국말로 된 한국 천주교회사를 엮어내야 겠다는 뜻을 전한다. 라리보 주교는 어렵게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기증하고, 뮈텔 주교의 소장 서적들을 이용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유홍렬은 책을 읽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3년의 조수 생활 끝에 조선사편수회로 옮길 것을 일본인 교수가 권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1938년 4월 천주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동성상업학교를 직장으로 선택했다. 그 당시 일본의 중국 침략, 제2차 세계대전 등의 국세정세로 인해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어를 계속 공부했으며 해방 진전까지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다 읽었다. 그 후 서울대학교의 사범대학으로 돌아가면서 교회사 연구에 열의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는 8.15의 민족 해방과 더불어 대학교수의 일을 맡게 된다. 때마침 결성된 한국 순교자 현양회의 주관자이던 윤형중 마테오 신부의 요청에 따라 1949년 2월에는 우선 1830년까지의 역사를 수록한 「조선천주교회사」上권을 출판하고 곧 이어 다음 해에 남은 부분을 쓸 작정이었으나 뜻하지 않던 6·25의 전란과 그 후 3년 동안의 부산피난살이 등으로 인해 이 일을 계속 하지 못하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 대학의 행정사무를 맡아 보는 사이에 틈을 이용해 다시 남은 부분을 쓰기 시작하는 한편 결국 13년 뒤인 1962년 8월에 10편 111장으로 엮어진 「한국천주교회사」를 출판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5년에는 다시 그것을 수정 증보하여 처음의 출판 계획처럼 상·하의 두 권으로 마무리 하여 10편 117장으로 엮어진 증보판을 내놓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국천주교회사 上, 下』 이다.
이외에도 유홍열의 개인 생애의 관해서 책이 아닌 인물 사전에서 찾아 본 그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그는 1945년부터 20년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을 하였다. 1954년 국사 편찬위원에 임명되고, 1956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초빙교수, 1960년에 학술원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1962년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되었으며 1963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6년에 대구대학장에 취임하였으며 1968년에는 성균관대학 교수가 되고 한국 사학회장에 선임이 된다. 1970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 인하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학계에 많은 공로를 끼쳐 문화훈장·건국훈장 국민장·3·1문화상·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조선 독립사상사고≫, ≪한국천주교회사≫, ≪한국 문화사≫등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56829
2. 유홍렬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1) 유홍렬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시각에 대한 이해
유홍렬의 연구 시각은 일단 통사적 저술에 관심을 둔 기록이었으며, 순교사적 시각과, 사상사, 문화사, 문명사자적 시각에 중점을 두었다. 그의 의 추천사인 서울 교구 대주교 노기남·바오로의 말에서 순교자들의 위대함을 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우리 한국 성교회의 영광된 발전은 오로지 이 책 속에 자세히 보이는 유명, 무명의 무수한 순교자들이 흘린 피의 갚음인 것이다. 참으로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인의 씨니라”(Sanguis Martyrum Semen Cristianorum)고 한 떼르뚤리아누스(Tertullianus,160?~222?A.D.)가 말했다. 유홍렬, 『한국천주교회사 上』, 가톨릭出版社, 1975.
유홍렬이 순교사 중심의 한국 천주교사를 서술 했다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1830년대까지 서술을 위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와 함께 그가 주로 참고했다는 우라가와 와사부로신부의 ≪조선순교사≫를 통해서도 파악 할 수 있다. 金壽泰, 『柳洪烈의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 교회사 연구 제21집, 2005, p93.
이렇게 순교사 중심으로 서술했다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사 上, 下≫의 목차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박해를 통해서 복자 복자 : 죽은 사람의 신앙과 덕행을 증거 하여 공경할만하다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발표한 사람에 대한 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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