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

 1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1
 2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2
 3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3
 4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4
 5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5
 6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6
 7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7
 8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제언을 생각함
-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을 읽고-
들어가면서
주어진 교과서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거기에는 첫째, 기독교 교육학에 관한 전문교과서를 처음 대한 것과 둘째, ‘기독교 교육과정’이라는 용어와 그 개념의 생소함, 셋째, 무엇보다 주된 원인은 나중에서야(교과서의 중반부쯤에 와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전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하나 하나에 매달린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즉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그 궁극적 지향점인 거대한 숲을 이해하고 나니 그 동안 내가 집착했던 나무는 그냥 넘어가도 될 그런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었다. 6장을 제외하고 다 읽었다. 약속한 시간 안에 리포트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렇게 하게 했다. 따라서, 리포트의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제물을 제출한 다음에 꼭 마저 읽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과제물을 빨리 끝내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한스 로크마커가 나무를 비유로 하여서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이야기한 것처럼 한스 로크마커(Hans R. Rookmaaker, 1922~1977), 「Art needs no justification」, 김헌수 역, 「예술과 그리스도인」(서울: IVP, 2002), pp. 51~55. 로크마커는 여기에서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다음과 같이 나무를 비유하여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내용이 우리의 작업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기에 내용을 일부 적어본다. “나무는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고, 그림자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 가지에는 새둥우리가 들어설 수 있다. 또한 산소를 생산하며 죽은 후에는 목재로도 사용되고 기타 등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나무의 의미, 피조물로서 그 존재와 실재는 이러한 기능들에 있지 않고 심지어 그 기능들의 총합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존재들은 창조주이신 대주재의 전능한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나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나무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그것의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이유 혹은 또 다른 이유로 나무가 몇몇 기능을 상실했다 하여 그것이 나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무는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 예술의 정당성은 이미 그것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가능성이라는 사실에 내재한다.”
, 나무의 기능에만 매달려 그것에 골몰함으로 정작 하나의 울창한 숲을 이루기 위한 나무의 존재 의미를 간과해 버리는 우(愚)를 범한 나는 이 과제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여러 복잡한 생각과 유혹(?)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아는 것만 쓰자, 최대한 간단하게 쓰자!’ 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단 한번의 집중수업과 교과서를 한 권, 그것도 알쏭달쏭 한 번 읽은 것이 고작인데 많은 것을 아는 체 허세를 부려가며 나 자신도 모르는 헛소리를 장황하게 적어내는 것은 여러 모로 에너지 낭비요 우스개 꺼리라고 생각했고, 둘째, 담당교수의 조언대로, 당신의 저작(著作)물을 가지고 학생인 내가 아무리 요약한다고 해봐야 서로에게 어떤 유익도 또한 재미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셋째, 그러므로 차라리 그 내용이 우습고 얼토당토않은 것 같더라도 나름대로 깨닫게 된 것, 자극 받은 것, 생각하게 된 것 등을 간단하게 써내는 것이 담당교수님으로 하여금 그 나마 말도 안 되고 논리도 엉성한 리포트를 붙잡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담당교수님도 배꼽을 쥐게 하고, 나 자신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분명한 믿음이 있다. 학생의 부족한 이해와 엉성한 논리, 그리고 유치한 글쓰기에 대한 지도를 담당교수님께서 기꺼이 감당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적어도 그것이 담당교수님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해주시리라 믿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교육’ 과목을 좀더 깊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필요한 과목인데…’ 한 번의 수업이 너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교과서에 충실하면서 관련 도서를 꾸준히, 면밀히, 더욱 깊이 있게 읽고, 연구해야 하는 거룩한 부담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거룩한 부담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왜? 현재를 포함한 내일의 교회교육의 길을 여기서 보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런 거룩한 부담감의 첫 장(場)으로 아주(정말 아주 잠깐) 잠깐이나마 빠져 들어가 보자. 단, 한 가지 미리 밝혀둘 것은 과제물을 위하여 주어진 주요 교과서에 직접적인 출처를 두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는 별도의 주(註)를 붙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들어와서
1. 궁극적 목표와 전개 과정
저자가 본 저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그것은 이미 우리 과제의 제목과 동일한 것이다. “기독교 통합 교육과정 제언함”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제언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 범위에 한하여서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할 수 있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