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평등교육의 한계와 방향 -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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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 평등교육의 한계와 방향
사례 1) ‘평각을 180˚에서 210˚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정7각형을 작도할 수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는 @@초등학교 5학년 정@@(11)군. 탐구심을 주체할 수 없지만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해결할 길이 없다. 오히려 ‘엉뚱한 질문’으로 교실의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정군이 서울의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2학년때 @@로 전학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능지수(IQ)160이상인 정군의 수난은 서울 @@구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시작됐다. 끊임없는 질문에 담임교사는 두손을 들었고 결국 ‘수업분위기를 망치는 아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정은 당시 열린학교로 명성이 높았던 여의도 @@초등학교로 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담임교사의 눈에 정군은 “머리는 좋지만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학교로 호출된 어머니 이@@(34)씨가 아이가 영재아라서 그러니 너그러이 보살펴달라고 간청했지만 담임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영재교육을 시키지는 못할망정 정상적으로라도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길”은 시골로 학교를 옮기는 것밖에 없었다. 2학년때인 @@년 4월 정군 일가는 어머니 이씨의 친정인 @@로 낙향했다. 단국대와 명지대 등의 미술강사로 출강하는 아버지 정@@(44)씨의 수입만으로는 정군에게 따로 영재교육을 시킬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례 2) 나는 시골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전날 숙제로 내주신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셨는데, 나는 손을 들고 그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잇따라 질문을 하셨고 나는 그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하였다. 한동안 동안 질문과 응답이 계속된 후 나는 갑자기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수줍은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교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나 이외에는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선생님께서 또 질문을 하셔서 나는 다시 손을 들고 그 질문에 또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교실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각 그들이 “저 애는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군단 말이야” 라고 불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입을 다물고 다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선생님은 숙제를 해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셨다. 그리고 그 날의 수업을 다음 날로 미루었지만 다음 날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불행하게도 그 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지만 나는 다시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욕을 먹는 일도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잇는 유일한 길은 전문분야의 특별활동에 등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우리 학교에는 그런 특별활동을 지도할 만한 선생님도 없었고 설사 그런 제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내게는 책이나 준비물을 살만한 돈도 없었다.
(사례 1)과 (사례 2)에 나오는 영재아 문제는 우리나라 초등 교육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영재아의 틔는 행동은 많은 아이들로 하여금 따돌림을 당하게 만들고 선생님에게도 결코 환영 받지 못한다. 아이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고 영재아를 대하게 될 것이고 선생님은 가르치는 입장에서 자신의 모르는 수학이나 과학적인 원리를 고차원적으로 알고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영재아가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영재아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실제로 영재아 문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영재아 교육 사설 기관의 인기를 실감했다. 영재 테스트를 하고 영재를 교육시키는 많은 업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설 기관 싸이트에 올라온 많은 학부모들의 아이에 대한 상담 내역을 보면 우리나라에 영재아가 아닌 아이가 드물지 않을까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하지만 그런 학부모들이 원하는 영재아란 고등교육과정을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일 것이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물론이고 영어와 초등수학은 사설 학원에서 마스터하는 아이들이 진정한 영재와 열성부모의 아이들과 혼돈을 주고 있다. 실제로 성적에 연연해 암기식 교육을 받거나 경시대회에 참가하려고 학원 등지에서 반복 교육 등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영재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4988da31 #4988da32 사례 3)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나서 점심식사 자리에 모여 앉은 1학년 교사들은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학교로 걸려 온 학부모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전화내용은 반에 발달지체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때문에 자기 아이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니 그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던지 자기 아이를 다른 반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발달지체아인 ○○가 자기 반에 들어 온 것을 알게 된 그 반 담임 교사는 한동안 걱정을 하더니 곧 아이와 가까워져 아이의 짜증이나 칭얼거림 정도는 가볍게 받아넘기고, 또 아이들에게도 "○○가 아파서 너희들과는 좀 다르니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1학년 수준에 맞게 일러주어 아이들도 ○○를 잘 도와주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말이다. ○○가 표정도 밝아지고 학교 가기를 좋아한다며 ○○ 엄마가 담임선생님 드시라고 사온 따끈한 떡볶이와 순대를 기쁜 마음으로 함께 나눠 먹은 지가 바로 엊그제인데 말이다. 그 날 1학년 교사 모두는 그런 이기적인 부모의 아이는 자기 반에 절대로 받아줄 수 없다는 말로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지만, 나는 몇 년 전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5학년 담임을 맡았었는데 자폐아가 우리 반에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증상이 좀 심한 편이어서 우리 반 아이 여럿을 피멍이 들도록 물어뜯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갑자기 뛰쳐나가는 바람에 아이들과 내가 온 동네를 찾아 헤매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 년 동안 부모들의 항의전화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손목을 물어뜯긴 아이의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면 "선생님이 힘드시겠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자폐아를 가진 부모를 걱정해 주었다. 그런데 만일 지금 그런 자폐아가 우리 반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쳐 자폐아를 가진 부모는 아이를 특수학교로 전학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교도 이제 세상의 인심처럼 갈수록 각박해짐을 느낀다. 장애에 대한 편견은 점차 사라지고 있음에도 장애를 가진 이와 나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이기심, 나와 생활수준이 다른 이와는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유치한 편가르기가 순수해야 할 아이들의 교육현장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자진해서 자폐를 가진 친구 옆자리에 앉아 세심히 돌보아주던 아이에게 "□□랑 같이 앉는 것 힘들지 않니? 자리 바꿔줄까?" 물었을 때 그 아이가 했던 말을 이기심과 편가르기에 찌든 어른들에게 던져주고 싶다.
"다 같은 사람인데요, 뭘"
(사례 3)과 같이 정신적 장아애와 함께 공부하면 같은 반 아이들이 많은 피해를 받을거라는 일반적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자폐아와 함께 공부하는 사례를 조사한 결과 같은반 아이들은 처음에는 장애아에 대해 두려움을 갖다가 점점 장애아를 먼저 도와주고 챙겨주는 솔선수범을 보이는가 하면 다른반 아이들의 비웃음까지 감싸 안는 이해심이 생기는 경우가 더욱 많다고 한다. 물론 수업시간에 시끄럽게 떠든다든지 학교 기물을 부순다든지 등으로 학습진도를 방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탈적인 행동은 반복적인 경고와 특수지도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사례 3)에서도 몇몇 학부모들이 장애아를 편견적인 태도로 대하지만 실제 함께 지내는 아이가 던지는 말에서 학부모들보다 생각이 깊고 소중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는 알 수 있다.
초등학교 교육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교육이고 평등 교육이다. 장차 학생들이 교과 공부를 해 나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과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지식 전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라는 체제에 잘 적응하는 사회화 학습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다양한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는 장애아나 영재아와 같은 특수아동을 함께 교육 시키는 통합 교육이 옳다. 하지만 초등 교육이 중등교육이나 고등 교육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이 우선시 되면서 초등 교육을 ‘준비’라 하고 고등 교육을 ‘목적’이라는 가치관이 지배 받고 있다. 초등교육은 그런 목적을 위해 획일화 되었고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교육기관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교육이 가지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 하고 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는 교육평등이라는 말을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석하는 일은 그만두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평등에 대한 지나친 가치부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특출하게 되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대신, 평범성을 미덕으로 여기고 그것을 보상하는 결과가 되어 결국 오늘날의 다양화된 문명에 적응 하는데 실패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교육혁명 중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산업사회 방식의 교육이 더 이상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각성을 바탕으로 ‘교육 뜯어고치기’ 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뜯어고치기’의 추세는 다양성의 인정과 추구에 있다. 이 전까지의 우리나라의 교육이 획일성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해방 이후 농업사회에서 벗어나 단기간에 급속한 양적 성장을 할 필요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획일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제도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 채, 여전히 통합교육 또는 평준화라는 굴레에 얽매여서 교육 수요자들의 욕구를 충족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과 그에 따른 왜곡된 영재교육 등으로 인해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가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이에 따른 공교육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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