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저항 시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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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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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용한 저항 시인 윤동주
< 목차 >
Ⅰ. 서론
Ⅱ. 윤동주의 생애
Ⅲ. 윤동주의 작품
Ⅳ. 윤동주 문학관
Ⅴ. 윤동주 생가와 시비
Ⅵ. 결론
Ⅰ. 서론
윤동주 시인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서 나에게 지대한 영감을 준 시인이다. 그의 시를 외우고 또 외웠다. 또한, 여자친구 앞에서 그 시들을 외우고 함께 그 시에 대한 영감을 느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후 사회활동에 바쁘다가 50이 다 외어 이제 다시 ‘한국문학의 이해’를 들으면서 그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그 때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었는데, 이제야 관심을 갖고 검색을 해 보니 윤동주 문학관이 종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회 활동에 바쁘다 보니, 종로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에 직접가보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과제제출을 하고나서라도 겨울에 좀 한가한 시간에 윤동주문학관에 아침 일찍 가서 하루종일 관람을 하고 올 계획이다.
Ⅱ. 윤동주의 생애
윤동주 시인은 당시 만주국 간도성(間島省)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아버지 윤영석(尹永錫)과 어머니 김용(金龍) 사이에서 1917년 12월 20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이 파평(坡平)인 아버지 윤영석(1895년 음력 6월 12일 출생)은 그 당시의 상당한 인텔리였다. 그는 명동중학교를 졸업하고 북경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한 때 소학교 교편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1920년대엔 일본에 건너가 도쿄에서 다시 유학을 하기도 했다. 시인의 어머니는 교육자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 1862-1942) 선생의 누이였다. 김약연 선생은 당시 간도 주민들의 정신적 기둥으로서 이 고장 명동 소학교와 중학교 모두 그가 설립한 규암서숙이 모체가 되어 세워진 학교이다. 윤동주 시인은 원래 4남매였는데 아우 일주(一株)는 성균관대 교수로 일하다가 86년에 작고했으며 누이인 윤혜원(尹惠媛)은 월남하여 부산에서 거주하였고 아우 광주(光株)는 북에 남아 있어서 생사를 알 수 없다.
윤동주의 아명(兒名)은 해환(海煥), 아우인 일주는 달환(達煥), 그리고 막내 동생은 별환(갓난애 때 죽음)이었다. 이 아명은 모두 그의 아버지가 지은 것인데 자식들 이름 앞에 해, 달, 별을 차례로 붙여 지은 그의 부친의 정서적 일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시인 윤동주의 동(東) 자는 「명동」에서 따 온 것으로 그만큼 이 고장 명동에 대한 애착은 각별하고도 큰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866년 그의 증조부 윤재옥이 43세 때 4남 1녀의 어린 자녀들 이끌고 북간도 자동(紫洞)으로 옮겨 온 후, 1900년 조부인 윤하현(尹夏鉉) 때에는 다시 명동촌으로 이사, 자수성가하여 가세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으며 윤동주 시인과 그의 동생들이 태어난 생가는 이 고장에서도 돋보일 만큼 큰 기와집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고장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리 만큼 그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도 이름난 곳이었다. 이 고장에 대한 그의 부친의 애착과 집념은 특별난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후일의 윤동주의 저항시인적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이 고장 명동촌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도 결코 군더더기는 아닐 것이다. 그가 자란 명동촌의 아름다운 자연은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배경이 되어주었다. 마치 존 키츠나 워즈워스의 고향이 그들의 시와 생애에 절대적 영향을 안겨주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