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동화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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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권정생 동화
1. 권정생의 생애와 문학 활동
權定生은 1937년 일본 동경 흔마치(本町)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權景守이다. 아버지는 거리 청소부였고, 어머니는 누비옷 삯바느질을 하였으며, 큰 누나는 12살 때부터 사탕 공장에 다녔다. 권정생은 시부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1944년 겨울 폭격을 피해 군마켕 쓰마고이로 이사를 한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모아 온 쓰레기 더미 속에 있던 「그림동화」,「행복한 왕자」, 「빨간 양초와 인어」등의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찾아내어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과 인연을 맺는다.
그의 문학 생성의 주요 모티브는 죽음과도 같은 빈궁 체험이다.
귀국후인 1946년 3월 그가 9세 되던 해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가족들이 각각 흩어지게 되어 부친과 작은누나는 안동으로, 권정생은 어머니와 함께 청송 외가에 머문다. 1년 반 동안에 여섯 번이나 옮겨 살아야 하는 힘겨운 생활이었다. 어머니는 가을에는 약초를 캐고 여름에는 품을 팔았다. 겨울에는 동냥을 나가 열흘이나 보름씩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어 남매 셋이 귀리죽을 끓여 먹으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때의 이야기를 쓴 것이 소년 소설 「쌀도둑」이다.
1947년 안동으로 가족이 다시 모이지만, 1950년 625전쟁으로 다시 흩어지게 된다. 그 후 부산에서 재봉기 상회, 서점 등의 점원으로 생활한다. 용돈이 생기면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친구 기훈과 함께 초량동 ‘계몽서적’이란 헌책방에서 책을 빌려다 보았다. 그때 그는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청년 베르테르의 사치한 죽음에 실망으로 분노를 느꼈고, 「단종애사」의 사육신을 존경하고 단종의 슬픔이 자신의 슬픔으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권정생,『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서울:종로서적, 1986).
그러한 상황에서 친구 기훈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기훈이 죽은 원인을 사람들은 식중독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을 자살로 믿고 있다. 그는 당시의상황을 “....갑자기 나는 넓은 바다 가운데 혼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며칠을 두고 상점 책상에 엎드려 꼬박 밤을 새우며 울었다. 위의 책,p.209
"고 회상한다. 그는 이때부터 한동안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그만두고, 서점에도 가지 않는다. 권정생은 1956년 19세 되던 때부터 결핵을 앓게 되며, 이후 그는 평생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 즈음 나의 병세 역시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폐결핵에서 신장, 방광 결핵으로 전신 결핵이 되어 갔다. 소변보기가 어려웠다. 획수가 잦아지고 통증이 뒤따랐다. 1시간에 1회였다가 30분마다 보아야 할만큼 횟수 가 늘고, 나중에는 10분, 5분으로 변소에 나들어야 했다. 밤으로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위의 책, p212.
그가 27세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 아버지도 돌아가신다. 아버지는 죽기 전, 동생이라도 우선 결혼시켜야 하겠다며 집안을 생각해서 1년쯤 집을 나가 있을 것을 권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동생을 위해 집을 나간 그는 대구, 김천, 상주, 문경 등을 떠돌며 거지로 3개월 남짓을 지낸다. 노숙을 하면서 두레박용 깡통에 밥을 얻어먹으며 ‘오늘밤엔 꼭 뉘 집에 가서 삽이나 괭이를 빌려 인적이 드문 산 속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죽어버려야지’하고 벼르곤 한다. 이 시기의 자화상은 참담한 걸인의 행색이었다. 오길주, 「권정생 동화 연구」, 석사 학위 논문(서울:가톨릭 대학교 대학원,1997)
1967년부터는 안동의 교회 문간방에서 지내며 종지기 일을 한다. 그때의 생활을 권정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 건물의 토담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외풍이 심해 겨울엔 귀에 동산 이 걸렸다가 봄이 되면 낫곤 했다. 그래도 그 조그만 방은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장 소였다.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호지문에 빗발이 쳐서 구멍이 뚫리고 개구리들이 그 구멍으로 뛰어 들 어와 꽥꽥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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