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 문서 연구] 세례자 요한과 사해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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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장. 세례자 요한과 사해 사본John the Baptizer and the Dead Sea Scrolls.
James H. Charlesworth
쿰란공동체와 세례 요한의 유사성과 차이점들이 확인되고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서로를 언급하는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이해가 무엇인지에는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 논문은 세례자 와 쿰란공동체의 관련성에 대한 것이다. 논자는 열 두 공동체규율두루마리비평편집본을준비하면서세우게된한가설을제시한다. 논자는 출판된 논문을 다루기 보다는 관심을 쿰란 텍스트로 옮기도록 한다.
접근과방법론 Approach and Methodology
그동안 세례자 요한연구는 주로 신약성서 자료로,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파악했다. 논자는 오히려 초기 유대교(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의 그의 위치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다.
1. 광범위한 유대의 세례운동
세례자 요한은 Bannus, the Nasoreans, Ebionites, Elkasites, 그리고 아담의 묵시(Apocalypse of Adam)과 시빌의 신탁(Sibylline Oracle) 4권의 배후그룹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세례운동에서 가장 걸출한 일원이다. ‘세례자Baptizer’라는 명칭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의 운동을 따른 자들에 의해 붙여졌다. 특별히 공동체규율Rule of the Community 에 비추어 접근할 것이다.
2. 사회적 그룹으로서의 쿰란공동체
쿰란공동체는 회원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높은 기준들과 회원승격, 임시적 퇴출, 영구적 제명에 대한 엄격한 규칙들을 가진 특별한 그룹이었다. 사회학자들의 순수성과 사회적 제한들에 대한 이론을 적용하여 이해를 풍부히하려 한다. 사회학적 인류학적인 방법과 통찰들은 70년-이전 유대교의 분파적 공동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쿰란 전문가들은 사회학적 분석의 유용함을 깨닫고 있다.
3. 세례자와 쿰란 관계성 연구의 계속적인 필요성
이제까지의 연구는 배타적으로 양분된 교착상태에 있다. 한쪽은 세례자가 에세네파의 일원이었거나 그들로부터 근본적으로 영향 받은 사람이라고 결론짓는다(Harding, Brownlee, Robinson, Danielou, Scobie, and Dunn). 다른 쪽은 세례자가 쿰란과 의미있는 접촉이 없었다고 주장한다(Baidi and Bgitti, Lupieri, Kazmierski).
최근의 두 연구에서, L.H. Schiffman은 세례자 요한이 쿰란 공동체의 한 일원이었을 것인데, 단지 “쿰란 분파주의자들과 특정한 사상과 공통의 종교적 환경을 공유했다”고 결론지었다. H. Lichtenberger는 요세푸스가 세례자 요한을 에세네파의 일원으로 묘사했지만, 그의 일생 중 어느 시기에 에세네의 일원이었는지에 대해 확정적인 답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한다. Lichtenberger는 두 대조적인 질문을 던진다: (1) 세례자는 “어느 한 때” 에세네 일원이었으나, 공적 설교 시기에 이르러 종파로부터 자신을 구분했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에세네 일원일 수 없는가? (2) 에세네 사람 요한은 세례자 요한이 되었는가?” 그는 모두 yes 가 가장 그럴 듯한 대답이라고 한다. 이런 질문들은 연구의 계속적인 필요, 특히 사해사본을 통한 연구의 필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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