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목회와 전도신학 설교자인 목사 말씀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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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목회와 전도신학 설교자인 목사 말씀의 종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루터는 설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과의사의 수술 칼에 비유하였다. 즉 설교자가 강단에서 전하는 설교는 말씀을 받는 사람에게 때때로 고통을 주기도 하고 저주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설교가 수술과 같기 때문에 말씀을 받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먼저 죽이는 작업이 필요하고 복을 내리기 위해 먼저 저주하는 말씀이 경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킬케골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인들이 편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비해 자신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음을 느꼈다고 했다.
종교개혁의 중요 목적 가운데 하나도 성직자들을 개혁하여 설교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좀더 자세히는 성서읽기와 설교하기가 중심이 되었다는 말이다. 루터와 캘빈과 쯔빙글리는 모든 설교를 가르켜 “입의 집(mouth house)라 하였고 ”아우구스벅 신앙고백“은 교회를 ”성도들의 모임으로 그 안에서 복음이 설교되고 성례가 집행되는 곳“이라 정의 하였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의 뿌리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것을 예배의 커다란 악폐중의 하나로 보았다. 곧 목사는 다른 어떤 직임보다 설교자다 곧 하나님 말씀의 종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사인 설교
누가는 데오빌로를 교화하려 할 때 케리그마, 곧 일어난 일에 대한 선포를 통하여 하였다.(행1:1-5) 여기서 우리는 설교가 신약성서보다 먼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서자체가 문학 양식 가운데 선포양식이라는 점에서도 이점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오늘 선포하는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강연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전하여 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만나게 하는 작업이다.
사도행전 17장에 바울은 그의 철학적 식견에서 선포하는 설교를 한다. 그러면서 시인을 인용하기도 하고 인간 공통적인 인간성으로 설교를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군중들은 그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 설교에서 나타났던 비웃음의 상황이 동일하게 연출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청중들이 미약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울과 같은 기독교 복음 전달자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들을 일반 사람들의 자연이나 세계에 대한 경험을 믿고 의지해 볼 수 있고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화와 관계하여 하나님을 입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신실한 복음의 전달자라면 계시에 대하여 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 경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은사로 주어지는 지식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사도행전에 “부활”에 대하여 전할 때 더욱 필요한 것으로 결국 기독교적 의사전달은 인간의 경험이나 능란한 구두전달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롭게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은사인 설교를 통해서이다. 바울은 우리가 땅에 씨를 심고 가꾸어도 결국 열매를 얻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함으로 설교 또한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담긴 은사적인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에 앞서 성서 본문이 설교자에게 말하고 있는 바를 마땅히 듣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것은 성서 본문 자체가 설교자나 청중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관계없이 본문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줄 큰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앞에 설교자가 성서 본문 앞에 귀를 기울이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성서적인 설교하기
성서는 하나님의 설교의 주요수단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성서 본문을 추종하고 본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하여 다른 무엇과 구별되는 기독교적 설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 탐롱은 목사의 설교 임무에 대해 “성서적인 설교자는 어떤 발견을 바라면서 교회 회중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성서 본문으로 간다 그런 다음 설교자는 발견한 것을 회중에게 알린다”고 하였다. 탐롱의 말은 설교는 설교자가 먼저 성서 본문을 만남으로 시작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남 전에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은 성서 본문이 들려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설교자는 성서에 대해 정중한 물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설교자가 성서 본문에 대해 갖는 의문은 설교자가 묻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성서가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서본문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성서 본문 가운데 색다른 것, 도전적인 것, 생소한 것, 또는 마음을 끄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설교 본문 가운데 익숙한 것 유용하고 적합한 것을 찾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그 질적인 차이에서 우리는 본문으로부터 도전과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본문 가운데 설교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본문이 괴상하게 보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교자에게 벼락을 치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의 세계관이 공격당하는 곳이 어디인지 등을 살펴 설교 준비에 있어 성서 읽기가 말씀 선포의 촉매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곳들을 통해서 본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계시의 길을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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