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이론과 공리주의자의 이론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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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칸트의 이론과 공리주의자의 이론을 중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도덕 혹은 윤리라는 과목은 공부하기에 부담 없는 쉬운 과목중의 하나로 여겨졌던 기억이 난다. 간혹 윤리학 이론의 사조와 해당 사상가들을 외우는 부분이 나와서 암기하느라 고생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은 암기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었을 뿐, 도덕이라는 학문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도덕이라는 교과서에는 거의 항상 ‘이러이러한 것이 착한 행동이다.’라는 기준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으로서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동이란, 교과서에 제시된 행위기준들을 그대로 외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시험에서의 높은 점수와 선생님으로부터의 칭찬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학생들은 콜버그가 말한 도덕성 발달단계 중 3단계(착한 소녀/좋은 소년 단계)수준에 머문 채, 왜 그것이 착한 것 혹은 좋은 것인지에 대한 정당성을 따져본 적도 없고, ‘착하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명쾌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복잡한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고민하게 되고, 이러한 고민은 ‘무엇이 선이며, 그것이 왜 선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고민은 윤리학자나 철학자들의 몫일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선’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에 빠질 위험이 있다. 첫째는 외부에서 주어진 도덕규범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채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에 빠지는 것이다. 이 경우 모든 사건들은 ‘도덕규범에 부합하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서 이분법적으로 존재하게 되며, 본인에게는 쉽고 명확한 도덕적 판단결과가 본질적으로는 전혀 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자칫 ‘선’이라는 것 자체와 기존의 모든 규범들까지 부정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 ‘왜’ 따라야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그러한 규범들이 개인적 이익과 상충될 때 사람들은 선과 규범자체를 부정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이익과 도덕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며, 도덕이나 윤리를 운운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의 암묵적 가정이 존재하는 듯하다. 의무교육기간동안 행해지는 도덕교육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에서부터 도덕적인 고찰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며, 이것은 무엇이 선이고 왜 그것이 선인지를 이해하기위한 시작일 것이다.
2. 경험 사례에 대한 이론적 고찰
나는 칸트의 이론과 공리주의자의 이론을 중심으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칸트는 ‘무엇이 도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보편화 가능한 판단이 도덕이라고 대답하였다. 칸트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이성을 신뢰하였으며, 무조건적 선의지를 강조하였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선한 결과’가 아니라 ‘선 의지’라는 점이다. 칸트는 의지와 결과 사이에는 운이 개입할 수 있다고 보고, 결과적으로 좋은 행동보다는 처음부터 선한 의지에 따른 행동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무조건적 선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형식적 정의로서 칸트는 정언명령을 주장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5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덕과 관련된 3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보편성 정식이다. 나의 행위 준칙이 공평하고 일관되게 그리고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다면 즉, 보편화 가능하다면 그것은 선이 된다. 이러한 보편성 정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관점자체를 바꿀 수 있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필요하다. 역지사지의 능력은 도덕을 넘어서 광범위한 인간생활 전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정언명령의 첫 번째 정식에서 이러한 능력을 강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언명령의 두 번째 정식은 인간성 정식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인간존중 정신은 현대에 와서도 평등의 정신과 연결된다. ‘역지사지’와 ‘인간존중’에 대한 강조가 현재에는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당시로선 혁신적인 주장이었으며,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두 가지 행위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이 칸트 이론의 의의일 것이다. 정언명령의 마지막정식은 자율성(혹은 자기입법)의 정식이다. 이것은 전통이나 권위와 같은 외부적 간섭 그리고 욕구와 감정 같은 내부적 간섭 모두를 배제한 채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입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입법을 위한 검토의 기준이 바로 ‘법칙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며, 이것은 다시 보편성정식과 연결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말로 알려져 있는 공리주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쾌락(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이란 단순하고 본능적인 차원에서의 쾌락이라기보다는 고급스런 상위의 쾌락을 말한다. 물론, 상위의 쾌락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목록화하여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쾌락을 식욕이나 성욕의 충족과 같은 본능적인 차원에서의 쾌락으로만 국한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오해다. 공리주의는 다시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로 나뉘는데, 규칙공리주의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전제하에 규칙을 고수하는 것이 다수에게 행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왜 공공질서나 학교규칙 등을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규칙공리주의는 칸트의 이론과 비슷하게 보이긴 하지만, 전자가 규칙을 지키는 것이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규칙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한 점과 달리 칸트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무조건적 선의지에 의해서 지켜야 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공리주의는 도덕을 과학화하고 증거 제시를 중시함으로써, 도덕적 딜레마 상황 하에서 합리적 판단을 위한 의사결정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또한 오늘날 매우 중요하면서도 간과되기 쉬운 공익이나 공공선 추구의 정당성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칸트와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을 표면적으로 비교해봤을 때,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 먼저 수긍이 가기 쉽다. ‘의무/선의지/이성’등의 단어들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칸트의 주장은 현실과 괴리된 탁상공론식 도덕론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반면 ‘행복추구/최선의 결과’등의 단어로 나타나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례들과 연결되어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칸트는 추상적으로 보이는 주장 속에 ‘인간존중’과 ‘역지사지의 능력’이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집어낸 반면,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은 최선의 결과를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이 나의 이익인 경우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대해 공리주의자들은 진정한 공리주의자는 개인적인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콜버그의 단계에 따르자면 5단계 이상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으로, 또는 정당화와 동기화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콜버그 도덕발달 단계 중 기껏해야 3~4단계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 공감하고 스스로가 공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의 이익(혹은 너 자신)이라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명료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물론 칸트의 이론과 공리주의자들의 이론이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며,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최선의 결과를 위한 규칙’이라는 것이 칸트가 말한 ‘선의지’와 상통하는 면도 있다. 다만 각각의 주장을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론만을 선호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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