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에라스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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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 에라스뮈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에라스무스(Edsiderius Erasmus, 1466~1536)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으로, 어려서 고아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재능을 인정받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리스와 라틴의 고전 문학을 연구한 후 영국과 이탈리아를 여행하였으며, 영국에 있는 동안 1509년에 우신 예찬을 발표하여 성직자의 거짓됨 등을 비판하였다. 그는 광신적인 신앙을 반대하고 종교 개혁을 찬성하였으나, 루터와 논쟁을 일으켜 신교와 구교로부터 모두 비난을 받았다. 그 외 저서에는 「평화의 호소」 등이 있다.
에라스무스에게 일반적으로 붙는 수식어는 인문주의자이다. 인문주의는 중세 시대가 끝나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 교육이며, 에라스무스는 교육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주된 기능은 자애로운 정신은 경건의 근원을 얻을 수 있으며, 둘째, 인문작품을 통하여 사랑하고 배울 수 있을 것이며, 셋째, 인생의 의무에 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며, 네째, 일찍 아동기부터 공손한 태도를 습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요약한 교육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양교육과 구원을 지향하는 기독교 교육, 기사도의 규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인문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한 고전을 흉내내어 형식화하는 경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즉, 에라스무스에게 있어서 인문은 교육의 도구(ex. 고전문학)로써 의미를 지녔으며,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ex. 고전문학의 정신)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천성이 대체적으로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 즉 이성에 의해서 안내되어지는 특질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의 인간관에 보편성 및 개별성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음을 말한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의 인본주의적 교수법은 보편성의 바탕 위에서 각자의 특질을 지닌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고, 점진적인 교육을 지향했을 것이다. 이는 교육자 및 피교육자의 의지와 자발성을 중요한 절차 준거로 내세운 Peters의 교육관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가 끝 나가는, 즉 르네상스라 불리는 과도기였다. 특히 주목할만한 변화는 종교 분야에서 두드러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루터와 기존의 교회 측 간의 분쟁이었다. 그 사이에서 에라스무스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혹은 못하고) 중재의 역할도 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라스무스는 신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인문주의자 내지는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실패하였던 것이다.
에라스무스를 위와 같이 휴머니스트로 보면, 그의 실패는 한 인간으로서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즉 자유주의적 견해의 실패로 볼 수 있다. 그는 미덕이란, 인간성에 입각해 성립한다는 믿음, 그리고 관용이란 열광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추진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그의 생애를 걸었다. 특히 그는 마음의 생활을 믿었는데, 그래서 그는 사려 깊은 인간은 선량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시대의 위대한 저술을 알고 사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시대를 좀더 올바르게,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믿었다.
에라스무스가 1516년 미래의 신성로마황제인 칼 5세의 궁정에 임명되었을 때 그를 위해 「그리스도교적 군주의 교육」을 썼다. 제목 속의 그리스도교적이라는 말은 3년 전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제목과 대조적인 강조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적이란 말로 에라스무스가 나타낸 의미는 보편적 선에의 갈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 보편적 선에의 갈망은 다가오는 투쟁에 있어서 양쪽의 폭력을 뚫고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에라스무스가 희망했던 것은 휴머니즘이 유럽의 한 끝에서 다른 끝에 이르는 보편적 평화의 운동으로 정착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에 많은 국가들을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한때 몇몇 국가의 대학이나 종교개혁가들이 그에게 문호를 개방한 적도 있으나, 종국에 가서는 에라스무스가 정착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은 그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 시대를 약간 앞서기 때문이었다. 후에 자유주의가 보편적인 경향으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에라스무스의 견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인간관은 자유주의적 인간관이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자유주의적 인간의 타당성, 혹은 당위성을 신의 권위에서 빌려오고 있는데, 이는 그의 수도원에서의 생활이 이러한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에라스무스의 견해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의 반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대적 상황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인간관에서 나오는 교육관은 자연히 자유주의적인 특징들을 지니게 될 것이며, 신으로부터의 해방, 인간 이성의 자율 강조 등이 그러한 것들이 될 수 있다.
그는 「아동의 자유교육론」(the liberal Education of Children,1529)에서 모든 교육은 빈부, 귀천, 남녀의 차별 없이 이루어지고 개성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육의 방법의 기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체벌은 학습의 동기를 유발하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자유인에게는 자유스러운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체벌은 자유인을 노예화할 뿐이며, 체벌 없는 자유교육이 참된 교육이다. 둘째, 아동의 성격을 면밀히 조사하여 개별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개성이 다양한 학생들에게 동일한 내용을 동일하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 셋째, 아동의 정신 발달과 흥미에 따라 가르치는 교재의 양을 조절하여야 한다. 넷째, 라틴어의 학습을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대화뿐만 아니라 모든 글과 편지를 라틴어로 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에라스무스의 교육론은 아동중심의 심리적 기초와 인문주의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1. http://www.imisool.com 교육사상가들의 생애와 사상
2. http://www.empas.com
3.http://home.pusan.ac.kr/~lim0711/etc/etc-1/etc-1-2.htm
4.교육의 역사와 철학 박의수 외, (동문사)
5.한권으로 보는 서양철학사 100장면 김형석, (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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