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50년대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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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40~50년대 문학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몰래 하와이의 미국 해군기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였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의 탄압은 한층 더 심해졌다. 경제적사상적 탄압정책은 민족의 원한의 대상이 되었으며, 민족말살 정책의 실현을 위해, 우리말우리 역사 교육을 금지시키고, 민족지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을 폐간시키는 한편, 신사참배, 궁성요배, 창씨개명 등을 강요하였다. 부족되는 인적물적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지원병징병징용학병근로보국대여자정신대 등의 강제적 징발과 식량유기 등을 공출이란 명목으로 강제 징발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으로써,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일본 식민지 정치에서 벗어나 광복이 되었다. 국내에서 해방감에 들떠 질서가 문란하고, 좌우익이 분열되어 대립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한에는 미소 양군이 각각 진주하였다. 남북한을 점령한 미소 양군은 점령 지역에 군정을 실시하니, 이로써 38도선은 군사경계선에서 정치분할선으로 변하여 한민족의 분단의 비극을 만들어 놓았다. 1945년 12월 15일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들은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한국에 민주주의적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최장 5년간 미국영국중국소련 4개국의 신탁통치 하에 둘 것이라는 한국 독립에 관한 구체적 절차를 결정하였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모두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모두 반대한다고 나섰으나, 30일부터 좌익 계열에서는 태도를 바꾸어 적극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신탁에 찬성하는 사람은 좌익이고, 반대하는 사람은 우익이라 하였다.
1948년 7월 17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7월20일 국회는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하여 24일에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8월 15일 조국 해방 기념일을 맞아,
②갈래별 설명
1.시
1940년대를 전후로 한 시기는 우리 문학기 가장 궁지에 몰린 시련기였다. 일제의 식민지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각 신문, 잡지에 대한 탄압도 강해졌다. 이에 따라 붓을 놓아버린 작가도 친일적 색채의 시를 쓴 작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도 꿋꿋이 저항시를 쓴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육사와 윤동주이다.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는 암흑기 속의 꽃이라 할 수 있다. 8.15 광복 후 다시 우리말로 글을 쓰게 되면서 문학창작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때 시는 두 갈래 경향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전통시의 재건을 꾀하는 시풍이고 또 하나는 30년대 주지시를 계승하고자 하는 시풍이다. 40년대 후반의 대표로는 생명파 청록파 김수영, 김경린 시인 등이 있다.
2. 소설
1940년대에는 소설 또한 창작이 힘들어 암흑기였다. 50년대에는 전쟁소설이 많이 창작되었다. 동족잔상의 아픔과 이념의 대립 등에 대한 소설이 많이 창작되었다.
이범선의 , 손창섭의 , 서기원의 등이 대표적 작품들이다.
③중요작품
이범선 - 오발탄
전쟁 뒤 고향을 떠난 월남 피난민 가족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 소설은 그 당시 민중들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비정한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6.25라는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 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1950년대의 실상을 잘 그려냈다.
김수영 - 폭포
부정적인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노래한 이 시는 8.15 광복 후 1930년대의 시풍을 계승하여 김수영, 박인환 등에 의해 주도된 주지시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이야기 한국사 청아출판사 교양국사연구회 엮음p.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