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교육 제도사 연구동향 분석 최광만 논문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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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후기 교육 제도사 연구동향 분석 최광만 논문 비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교육사 연구의 경향이라고 할까? 논문 제목에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고려후기 교육제도사 연구동향 분석’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질적 연구에서 문화현상을 기술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연구동향을 분석하는 자체만으로 논문에 의의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적어도 연구동향을 분석해서 어떠한 과제를 제시한다든가, 어떠한 방향의 연구 문제를 도출하든가 하는 문제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연구 내용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다루었다면, 제목을 선정하는 데 좀 더 고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2. 논문의 요지
이 논문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분석하고 향후 과제를 모색하는 데 연구 목적이 있다. 기존의 교육제도사 연구물은 학교, 학교관계시험, 과거제의 운영 등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며, 시기적으로 여말선초의 교육사적 과제를 다루며 진행한다. 연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자감(성균관) 연구 동향이다. 이 부분에서 연구자는 국자감의 조직과 명칭의 변경에 주목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고려후기 교육제도사의 동향에 관하여 먼저 국자감의 조직과 인종 대의 학식 문제를 후기까지 결론지을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또한, 7재의 성격에 관하여 국자감의 재편이냐, 상위 교육단계이냐, 별도의 교육기관이냐 등의 연구 동향이 있다.
둘째, 향교 연구동향이다. 이 부분에서 연구자는 향교의 실태와 문교제도와 교육과정에 주목한다. 고려후기 향교는 전반적인 쇠퇴를 가져왔고, 후기 향교의 확대나 교관에 대한 장려책이 미비하다. 이와 관련하여 향교 교육의 실태를 송춘영과 박찬수의 연구 동향을 예로 들었다. 고려 후기는 분명 이전의 시기에 비해 향교 교육이 전반적으로 쇠퇴했다. 하지만, 점차로 예전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으며, 또 회복해 갔다. 이후 조선 초기 향교교육 진흥정책도 이러한 흥학정책이 연속선이었다. 고려 후기 향교교육의 문묘제도와 교육과정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성리학 도입 이후 14세기부터 향교가 신축되고 문묘 옆에 강학장소를 마련하는 사례가 발견하기도 하지만,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이 별도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으며, 전반적으로 문묘제도의 비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후기의 변화로 주목되는 것은 교육과정의 변화이다. 이는 성리학 중심의 경학교육을 강화하려는 조치이다. 고려 후기 향교는 문묘제도나 교육과정 운영 면에서 전기의 특성을 탈피하여 조선의 향교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셋째, 사학 및 서재의 연구동향이다. 이 부분에서 연구자는 사학의 관학화, 하과, 서재에 주목한다. 유홍렬, 박성봉, 박찬수의 연구 성과를 분석하고, 고려 중기부터 사학은 국자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추정한다. 그 근거로 인종 대 사학에서 실시하는 하과에 국자감이 관원으로 파견되어 그 업무를 수행한 점을 들고 있다. 또한 후기 사학이 관학화 되었다면, 그러한 현상은 국자감의 교육을 강화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시행되었고 그러한 현상은 고려 중기부터 이미 시작되었음을 주장한다. 하과는 중기 이후부터 도회라고 불려진다. 하과 또는 도회는 전통시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학습유형으로 주목을 끌지만, 연구는 없었다. 도회는 조선 세종 대 향교 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한 장학책으로 부활했으며, 성종대까지 도회의 학습효과에 대한 보고가 있은 것으로 보아 하과[도회]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학습방식으로 그 실체에 관한 해명이 요구되어야 한다. 한편, 이병휴는 고려 후기 향교교육이 쇠퇴하면서 서재교육이 활성화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는 관학이 부실해지는 상황에서 교육체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던 전통적 요인에 관하여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고 있다. 후기의 서재는 고려 후기 특수한 조건과 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연구자는 주장한다.
넷째, 학교관계 시험 연구 동향이다. 연구자는 국자감시와 승보시에 주목한다. 국자감시는 예부시의 예비시험이라는 주장과 국자감 입학시험이라는 주장이 있다. 현재로서는 명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예비시험이라는 주장은 그 간격이 불규칙하고, 국자감시 없이 예부시를 시행한 사례와 반대로 국자감시를 두 번한 후 예부시를 시행한 사례 등의 문제점이 있다. 예비시험설을 반대하는 설도 국자감시에 합격한 사람이 국자감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명확히 밝혀야 하고, 소과와 대과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므로 문제점이 있다. 승보시와 관련하여 박찬수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다. 박찬수는 승보시가 7재생을 선발하는 시험으로 예부시를 시행한 후 결원을 보충하는 시험이라고 덧붙인다. 다만,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에 관하여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3. 논의할 것 몇 가지
연구자는 고려 후기 교육은 전기와 조선시대 초기의 교육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후 시기와의 관련 하에 일관성있게 설명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내 상황뿐만 아니라 원, 명과의 관계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관학과 사학을 구분하는 관점 이외에도 중앙과 지방, 초등과 고등 교육을 구분하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교육사를 정치사와 구분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 논문을 통해 논의해 볼 것은 논문 내용과는 관련 없는 몇 가지이다.
첫째,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논문 제목의 문제점이다. 고려 후기 교육제도사에 관한 연구 성과가 미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따라서 기존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논문으로 연결될 수 있느냐이다. 다시 말하면, 제목과 연관하여 볼 때, 어떠한 연구를 위한 선행조건이 아닐까 싶다.
둘째,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행은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고려후기부터 등장한 신진사대부에 의해 조선이 개창된다.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 연구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 이행은 고려 후기가 아닌 고려 말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고려 후기로까지 상정할 수 있는지는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