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성장과정 가풍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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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육사의 성장과정 가풍과 교육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육사를 가리켜 투철한 역사의식, 민족의식과 불굴의 투혼을 가진 지절시인, 저항시인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진술 속에 이러한 압력이 암암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근거 없는 과장이나 오해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관용적 진술이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그 이상의 무엇 또는 그 배후의 무엇을 밝히려는 진지한 탐구에 이어지지 않을 때, 이육사라는 한 인간을 신성화, 우상화 하게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저희 조는 특히 이육사 시인의 시를 분석하면서 종래의 연구가 신념의 탁월함과 시적 탁월함과 감동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띠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육사는 정말 저항시인일까? 가 저희조의 첫 물음입니다.
이육사의 성장과정 (가풍과 교육)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의 성장과정을 아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이육사의 성장과정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육사는 안동의 작은 마을 원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퇴계 이황의 14대 손입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저항성이 강한 성격을 보였습니다. 원촌의 이웃마을 하계와 원촌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이 두 마을의 저항성은 돋보였습니다. 근대사에 접어들 무렵 이 두 마을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빛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대개 학연 및 지연에 따라 분류하면, 지역감정을 연상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러한 출신에 따라서 시대에 대처하는 양상은 분명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곳곳을 조사해보면, 독립 운동가들이 집중적으로 배출된 지역이나 학통이 존재했고, 또 그 반대로 친일파를 많이 배출한 곳도 존재했습니다. 하계에서는 예안 의병장을 지낸 이만도가 일제 강점에 들자 단식하여 순국하였고, 그의 집안 모두가 항일 투쟁사의 거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1 운동이나 6,10 만세시위 및 신사참배 반대 운동까지 원촌에서 집중적으로 배출되었습니다. 이육사의 성장환경에서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는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육사의 외할아버지 범산 허형은 의병장으로 이름난 왕산 허위의 사촌이었고, 그도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었습니다. 또 육사의 외숙들도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는데, 특히 일헌 허규의 영향을 입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외사촌 허은은 아버지 일창 허발의 손에 이끌려 만주로 갔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1908년 허위가 사형되었을 때, 그 시신을 인수하여 장례치를 형제가 없을 만큼 육사의 외가는 만주나 러시아로 망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육사의 집안은 친가와 외가가 모두 강렬한 항일 투쟁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자라난 이육사나 그의 형제들 모두 그러한 성향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육사의 형제 중 맏형인 일하 원기, 동생인 수산 원일, 여천 원조도 항일 투쟁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그의 외가의 분위기와, 어머니의 교육 덕분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이육사의 성장 환경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할아버지로부터의 한문 교육에 있습니다. 육사와 그의 형제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랑방 문갑에 있는 도장재료를 탐내어 놀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서로 경쟁했다고 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필 에서는 내 나이 여섯 살 때 소학을 배우고라고 묘사라고 있는데, 여기서 한자를 익히기 시작한 대체적인 나이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육사의 출신 학교들을 보면, 보문의숙과 도산공립보통학교가 맨 처음 눈에 띱니다. 보문의숙은 이 씨의 문중학교였습니다. 이것이 의숙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도산공립보통학교로 바뀌면서 이육사는 보문의숙을 다니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로 편입됩니다. 여기서는 안동 학맥으로 수학하였으므로 별 특이점은 없으나, 결혼 후 장인이 학무위원으로 있던 백학학원을 다니면서 안동학맥과 한주학맥을 부지불식간에 어우르게 되었다는 것에 특이점이 있습니다. 그는 두 학파의 분위기를 같이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이육사는 중국에서 군사간부학교를 수료했습니다. 군사간부학교는 독립전쟁을 벌여야만 독립할 수 있다는 의열단투쟁에서의 한계인식에서 나왔습니다. 이육사는 김원봉이 설립한 군사간부학교를 수료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사회주의 노선에 눈을 떴으나 김원봉의 사회주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귀국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그의 시 세계에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조는 우선 내용 분석에 초점을 두었고, 그의 작품을 외재적 관점으로 살펴보면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작품의 해석법은 최대한 지양했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살펴보실 첫 작품은 이육사의 첫 작품인 말이라는 작품입니다. 우선 이 작품의 의미해석을 중심으로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흐트러진 갈기, 후줄근한 눈, 밤송이 같은 털, 오! 먼 길에 지친 말, 채찍에 지친 말이여! 라는 1연은 지친 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수그린 듯 한 목통, 축 처진 꼬리, 서리에 번적이는 네 굽, 오! 구름을 헤치려는 말, 새해에 소리칠 흰 말이여! 로 2연으로 오면서는 목통을 수그리고 꼬리는 처져 여전히 지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이 말이 차가운 서리에도, 번적이는 네 굽으로 구름을 헤치고 새해에 소리 칠 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내용의 흐름상으로 볼 때 말의 이러한 변화는 희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희망적인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육사의 작품 집필 당시와 함께 작가론 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당시 이육사는 장진홍이라는 애국열사가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배달시켜 폭발을 일으킨 폭탄의거사건에 일본경찰에 의해 용의선상에 떠올랐고, 이육사의 형제들과 함께 억울하게 옥고를 치뤘습니다. 이 말이라는 작품은 옥고를 치룬 후에 쓰여진 작품으로, 흐트러진 갈기나 후줄근한 눈, 밤송이 같은 털로 묘사되는 지친 말의 모습은 이육사 자신의 모습으로, 오랫동안 감옥에서 고생하고 나온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연으로 가서, 여기서 새해란, 1930년 경오년, 즉 말의 해를 말합니다. 지친 자신의 모습을 많은 동물 중 말로 형상화한 이유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작년의 자신의 모습이 지쳐있는 말의 모습이었다면, 새해에는 추운 서리에도 지지 않고 네 굽을 번적이며 새해에 소리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사의 자기 고백과 희망의 어조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살펴보실 작품은 자야곡이라는 작품입니다. 자야는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할 때 그 자이며 밤 열한시부터 오전 한시, 혹은 밤 열한시 반부터 오전 영시 반을 가리킵니다. 둘 중 어느 뜻으로 쓰였든 자야가 의미하는 바는 한 밤중으로 아주 어두울 때입니다. 보통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어두워지면 빛이 들어오기 마련인데 시적화자의 고향은 원래는 수만 가구의 빛이 들어와야 할 마을이었으나, 어두워진 이 마을에는 빛이 들어와 있지 않을뿐더러, 마을 어딘가에 존재할 무덤에 노랑나비조차 오지 않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무덤의 쓸쓸한 모습이 노랑나비조차 오지 않아 더 쓸쓸해 보입니다. 이곳에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슬픔, 자랑 등이 그 쓸쓸함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파이프에 담배를 태웁니다. 이 어둠 속에서 피는 담배는 향기롭습니다. 3연을 보시면 연기가 돛대처럼 흔들린다고 묘사되어있습니다. 배가 언젠가 도달해야 할 곳은 항구이고, 연기가 돛대처럼 흔들려서 고향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옛날의 들어서 여는 창이 생각나고, 이 모습에 화자는 눈물짓습니다. 4연으로 가서 화자는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돌아갑니다. 화자의 쓸쓸하고 어두운 고향의 모습은 화자로 하여금 술을 마시고 돌아가도록 하게 만듭니다. 5연으로 가서 숨이 막혀 질식할 듯한 마음속에서 강물의 흐름을 찾고, 달이 강을 따르듯이 시적 화자의 마음은 차디찬 강물과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다시 4연으로 돌아가 4연의 1행을 보면, 바람 불고 눈보라가 치지 않으면 못산다는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조는 여기서 의문을 품었는데, 결국 이것은 계절마저도 바람 불고 눈보라가 치지 않는다면 너무나 잔인한 현실인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꽃 피고 새가 운다면 계절이 부정적인 상황을 인식하여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절의 인식은 이육사가 처했던 현실과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즉, 여기서 이육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보여 집니다. 5연에서, 고향 상실이 시적 화자에게는 고향 상실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으나, 이육사의 현실에서는 고향 상실의 답답함이 나라의 상실의 답답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보실 작품은 청포도입니다. 1연을 보시면 시적 화자의 고향의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입니다. 2연에서는, 청포도가 전설처럼, 그리고 먼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풍요롭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4연을 보시면 손님이 고달픈 몸으로 푸른 색깔의 베옷을 입고 찾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손님이 입고 있는 베옷과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이라는 계절을 고려해 볼 때, 마지막 연의 식탁 위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은 고달픈 손님을 위한 화자의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이 손님은 이미 찾아오기로 약속 된 손님이며, 분명치는 않지만 언젠가는 찾아 올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은쟁반 위 모시수건을 손님이 찾아오기 전부터 준비하는 것과, 5연의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만하는 시구를 볼 때 손님은 화자가 오기를 바라 마지않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포도는 손님이 찾아오는 이유이며, 그렇게 바라는 손님과 함께 먹을 음식으로, 소중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외재적인 관점으로 살펴본다면, 3연에서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이라는 시구에서는 밀려오는 푸른 바다와 하얀 돛단배가 밀려들어오는 모습에서 푸른색과 흰색의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푸른색과 흰색의 대조라는 것은 고등학교 때 청포도를 배우시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