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각기동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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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공각기동대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선, 이 영화가 말하자고 하는 것은 인류의 정신적인 의미로서의 진화, 현세의 더 위에 있는 상위세계, 우주적인 의사로의 진화라고 할까, 용합이라고 할까, 대단한 unison라고 생각된다. 신체(의체)라는 한계를 넘어서 순수한 정신으로 진화를 하려고 하는 생명체가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온 소녀였던 것 같다.
베르크선은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사물의 경우라면 공간 속에 늘어놓아도 그 것을 재고 공간적으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상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는 정신 상태는 공간적존재가 아닌 시간적 존재라고 말한다.
모토코는 자기의 의체(물질적존재) 속에 있는 자기의 존재에 의심을 갖고 있다. 영화에서 모토코는 타인과 자기를 구분하기 위한 얼굴, 그리고 의식하지 않는 목 소리, 일어날 때에 보는 손 등의 모든 것이 자기의 일부분이고, 나라는 의식 그 자체를 낳고 그래서 동시에 나를 어떤 한계에 제약한다라고 말한다. 모토코는 우리의 시각적인 정보가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자신의 순수한 정신을 제대로 보지 못 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자기 정신을 보려고 해도 보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베르크선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세계는 어떤 것이도라도 공간에 놓은 다음 공간화시킨 곳을 재고 분석하려고 한다. 분석이나 잰다는 행동의 결과는 항상 숫자나 양으로 나오고 시각적 정보 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정신)은 그런 공간에 놓을 수 없는 것이라서 숫자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볼 수도 없고 해석도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에 놓을 수 없는 것을 그는 시간의 순수지속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순수지속은 직감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순수지속은 기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기억은 물질적존재가 아니고, 뇌라는 신체 일부의 활동도 아닌 정신에서 유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에는 행동에 가까운 것, 행동해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있다. 행동과 생각함은 극과 극으로서 그 사이에는 서로 성질을 달리하는 여러 종류의 기억이 존재한다.
순수기억이라는 것은 우리 행동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억이다. 그것은 생명의 기억이다. 마치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DNA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고, DNA 풀 속에 있는 것은 생명의 기억이다. 영화에서 화석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생명의 기억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 된다. 지금까지의 기억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듯이 순수기억 역시 현재의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베르크선이 말하는 생명의 예측불가능한 비약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베르크선은 물질적존재의 개념은 오히려 공간성에 침식되고 있다고 하고, 순수한 시간성을 빼내려고 했다. (순수지속)공간의 특징이 병렬, 상호의존성이라면 공간의 특징은 계기, 차별화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시간이라는 의식, 정신은 공간으로서 고정적으로 결정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유동적이고 비결정적인 것이고 생명은 자유와 함께 예측 불가능한 비약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토코가 인형사와 용합할 때의 장면에서는 인체(의체)의 제약을 벗어나 생명의 정신적 비약을 가진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DNA(유전자)는 생명에 대한 기억이자 역사이다. 그렇다면 유전자와 순수지속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베르크선은 순수지속이 직감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두가지 면에서 순수지속과 유전자가 비슷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나는 두가지 모두 생명체의 기억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를 통해 개체를 끊임없이 생성해 가는 것 처럼 순수지속 역시 동일한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한편,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유전자와 순수지속은 본질적으로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개념이다. 바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물질적인 존재와 순수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관념으로 대별되는 개념인 것이다.
베르크선이 말하는 순수지속을 느낄 수 있는 직감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우선, 직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한 직감은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서는 의식하지 못 하는 뇌의 활동에 의한 생각 혹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사전적 의미-사물의 진상을 순간적으로 감지함) . 그러나 직감이라는 것도 문화와 경험의 산물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의도적인 조절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베르크선에 따르면 직감이라고 하더라도 경험이나 문화에 영향이 받는 직감이 아닌 순수한 직감을 통해서만이라야 순수지속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직감이 실체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직감이라기 보다는 생명체의 움직임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생명체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순수지속이다. 순수한 직감을 알게되면 그와 동시에 순수지속도 알게 되는 것이다. 직감이라는 것은 순수지속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그런 직감으로 인류, 생명체의 움직임(순수지속)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실재론이나 관념론, 그밖의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의 담론들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우리에게 생명체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비록 무의식적으로 수용되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그것을 분석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런지 걱정이 앞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