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이해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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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철학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이해 차이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동방정교회는 많은 박해와 가히 측량할 수 없는 고난에도 수세기에 걸쳐서 그 전통을 유지하여 왔다. 동방교회는 많은 도전을 받아 왔고 오랫동안 심각한 고난을 당했지만 계속하여 그러한 도전과 고난을 극복하면서 동방교회의 풍부한 유산을 증거 해 주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동구 ㆍ러시아가 개방되면서 우리나라와도 교류하기 시작했다. 특히 종교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공산화되기 전 러시아의 국교였고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그 신앙의 뿌리를 지켜온 러시아 정교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 러시아 정교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상당부분 로마 가톨릭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본 발제에서는 동방정교회의 중핵을 이루는 러시아 정교회를 중심으로 발제를 하도록 하였다. 역사와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다음은 발달 단계에 따른 러시아 정교회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A. 역사와 특징
1. 역사
동방정교회 ( Eastern Orthodox Church)
가톨릭교회·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3대 교파 가운데 하나. 그리스정교(Greek Orthodox), 또는 정교라고도 한다. 넓은 뜻의 동방정교회는 후일 중국으로 들어와 경교(景敎)라고도 불리게 되는 네스토리우스 교회라든지 그리스도단성론으로 여겨지는 아르메니아교회, 이집트의 콥트교회, 에티오피아교회 등 그리스도교의 이단그룹을 포함한다. 그러나 동방정교회라고 할 경우는 좁은 뜻의 동방교회, 즉 중동·동유럽·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15개 자립교회의 연합체를 일컫는다. 동방정교회는 다른 2대 교파인 가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와 비교한다면 대체로 낯선 편이다. 그러나 동방정교회는 원래 고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원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잘 전해왔다. 고대 교회는 로마제국에서 발생하여, 전 교구를 예루살렘·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안디옥)·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로마 등의 5대 교구로 나누었다. 그 중 로마교회만이 11세기에 분리되어 나가, 이후 로마가톨릭교회로서 발족했으며, 다른 동로마(비잔틴)제국 내의 여러 교회는 동방정교회로서 발족했다. 그 후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비잔틴제국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하였기 때문에 그 대신 러시아가 동방정교의 대국(大國)으로 등장하였다.
러시아정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
그리스도교의 한 파로서, 동방정교회의 중핵을 이루는 러시아의 자치(自治)교회.
기원 후, 1세기경 사도 안드레아가 처음으로 예루살렘에서 북동쪽 대륙으로 선교의 발걸음을 옮겨서 흑해(黑海) 주변 시노페와 코르순 지역에서 선교했다고 한다(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 사도 안드레아가 방문 선교했던 지역은 후일 키예프와 노보고라드라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988년 키예프공국의 블라디미르대공(980~1015)이 세례를 받음으로서 정교회는 러시아의 국교가 되었다. 1019년 야로슬라브 공(1015~1054)이 키예프 러시아의 권력자가 되어 러시아를 그리스도교화하는데 공헌하였다. 1037년에는 테오 펨프스 대주교가 키예프 러시아의 수좌주교로 착좌하였다. 1237년 11월 바투가 4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입하여 1240년에 키예프를 점령한 이후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대공의 막내아들 다니엘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전쟁으로 찌든 러시아 백성들은 모스크바로 몰려들었고 이반 1세(다니엘의 둘째아들) 때에는 모스크바가 전체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1380년 9월 8일, 약세의 러시아 군대는 40만 몽골대군을 격전 끝에 격파함으로써 러시아는 정교회 국가로 남게 되었다. 1472년 이반 3세(1462~1505)는 마지막 비잔틴 황제의 조카 소피아 팔라이올로고스와 결혼하고 쌍두(雙頭) 독수리 문장(紋章)을 취하고 자칭 짜르, 곧 황제가 되어 비잔틴 제국의 후계자로서 러시아를 제3의 로마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