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회의 사회복지신학을 위한 예수의 전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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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개신교회의 사회복지신학을 위한 예수의 전거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교회들이 일년 예산의 약 15%정도를 사회봉사를 위하여 쓴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전도나 개척교회를 설립하는데 대부분이 사용되어 실제로는 약 5%정도만이 사회를 위하여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목회자들 90%정도가 사회 선교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대답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교회는 누구 때문에 오늘날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사회봉사를 소흘히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목회자들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적으로 예산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개신교회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70%정도가 미자립 교회인 것을 감안할 때 한국 개신교회가 여유를 갖고 사회봉사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1. 한국 개신교회가 선교 초기부터 어려운 한국의 역사 속에서 사회 복지의 주역을 담당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 1885년 개신교 선교의 초기
한국에는 1885년 개신교의 최초의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개신교의 선교는 실제로 병원과 학교 설립을 통한 서양 문화와 기술 전수에 주력하는 사회 복지의 차원을 가졌다. 이는 10년 전에 먼저 들어온 천주교와 정부와의 갈등과 박해 그로 인한 선교의 어려움을 피해나가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특별히 식민 착취 경제체제로 인하여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통한 선교적인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 1885년 고종의 윤허로 알렌에 의해 처음 세워진 광혜원
▷ 1910년까지 30여개의 병원이 세워짐
- 아펜젤러가 세운 최초의 사립학당인 배제(1885.8.3)
- 1886년 언더우드가 고아원 형식의 학교인 경신학당 세우고 연희전문학교 세움
- 1886년 스클렙튼여사는 최초의 여학당을 정동에 세워 고아, 과부, 첩 등의 소외계층 교육
▷ 1910년까지 720개의 기독교 학교가 문을 열었다.
- 1893년 장로교회가 1890년 중국에서 제안되었던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을 한국 개신교회의 선교의 정책으로 삼음 - 이는 선교의 대상을 하층민(가난한 자, 여자, 상놈, 농민)중심으로 하였다. 여기서 교회가 처음부터 약자의 편에서 선교를 하였다는 사실은 한국 개신교회의 중요한 사회 복지적 선교적 출발점을 보여준다 하겠다.
■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1910~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