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시장공동체의 필요성과 한반도의 평화통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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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아시아 시장공동체의 필요성과 한반도의 평화통일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
대동아란 동아, 즉 동아시아에 동남아시아를 더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였으며, 같은 달 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전에도 일본은 중국의 둥베이 지방, 즉 만주를 침략하기 직전인 1931년에 일본·조선·만주·중국·몽골의 다섯 민족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일본과 만주가 블록을 결성해야 한다는 일만(日滿) 블록 같은 슬로건을 선전하고 있었다. 일만 블록의 슬로건은 만주를 점령한 후인 1933년에는 중국을 합한 일만지(日滿支) 블록으로 발전하였으며, 1938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일본·만주국·중국이 주도하여 동아 신질서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일본 외상은 담화를 발표해 처음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다. 그 요지는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하여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동아공영권의 결성이란 일본·중국·만주를 중축(中軸)으로 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타이·말레이시아·보르네오·네덜란드령 동인도·미얀마·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의 정치적·경제적인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블록화였다. 그러나 실제로 대동아공영권에서 일본이 한 일은 피점령국의 주요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것이었으며, 이 목적을 위하여 식민지와 점령지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허황된 슬로건으로 끝났다.
※ 관련기사 - 한·중·일 함께 쓰는 역사 함께여는 미래
사상 첫 동아시아 공동 역사교과서인 발간을 앞두고, 공동교과서 집필위원들과 함께 그 내용과 쟁점을 매주 수요일마다 소개한다.
3국 교과서에는
한·중, ‘대동아’ 용어 부정 ‘태평양전쟁’으로 전쟁위한 인적·물적자원 수탈과 저항 실어
일 “남방진출 아시아 독립 앞당겼다” 미화
‘대동아’ ‘대동아전쟁’ ‘대동아공영권’ 등의 개념은 일본 역사교과서에만 등장한다. 한국과 중국 교과서에는 대동아라는 낱말 자체가 없다. 태평양 전쟁 또는 2차 세계대전 등의 용어를 쓰면서, 이 시기 일제의 수탈과 침략,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을 서술하고 있다.
는 일본 제국이 창출한 정치적 구호인 ‘대동아’를 적극적으로 불러와 그 실체와 논리를 보여준다. 다만 그 시각은 비판적이다. 3장 2절 ‘일본의 침략전쟁’ 편에서 여러 쪽을 할애해 ‘대동아공영권의 환영(幻影)’을 서술하고 있다. 한국·중국 학생들의 시선을 넓히는 동시에, 일본 학생들의 마비된 비판의식을 일깨우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