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와 철학자 엠마누엘레 비나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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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엠마누엘 레 비나스는 1906년 러시아 리투아니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프랑스로 유학해 철학을 공부하다가 1928∼192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수업을 들으면서 현상학을 연구한 뒤 1930년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일찍부터 프랑스 철학계에 현상학을 소개했으며 사르트르도 레비나스의 박사학위 논문과 의 번역을 통해 훗설을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는 원래 하이데거를 존경했으나 하이데거가 나치즘을 옹호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 이후에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동구에 있던 자신의 모든 가족, 친척들이 나치에 의해 살해된다. 인류에게 저지른 나치의 잔혹성과 그에 따른 공포의 기억이 곧 그의 철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의 철학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그는 포로 수용소에서 를 집필하였다. 그의 저서는 25권 정도에 달하는데 대표적인 저서는 으로 이 책을 통해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후 그는 을 발표했으며 벨기에 루뱅대학과 네덜란드 레이든대학 등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소르본느대학 교수활동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고,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레비나스는 독립적인 자아의 출현을 ‘잠’을 통해서 설명한다. 그는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의식을 인간의 본질로서 여겼지만 그는 의식이 무의식을 통해서 규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의식은 우리가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잠을 잘 수 없으면 인간의 의식은 영원히 깨어있고 끊임없이 활동해야하므로 결국 인간의 우리 자신의 의식에 대해 어떠한 주도권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잠을 통해서 우리가 자기의식으로 되돌아올 수 있으며 의식 활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관점에서 하이데거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 하이데거가 에서 사물들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이 우리가 그것들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인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염려하는 존재로 본 것과는 달리 레비나스는 향유가 세계 내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향유의 관점에서 볼 때, 사물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원천이자 만족으로 체험되며 그는 바로 향유를 통해서 주체성의 모습이 최초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인은 우리에게 얼굴로 나타나는데 얼굴은 사물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사물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 또는 전체 속의 한 기능으로 의미가 있지만 얼굴은 사물과는 달리, 바라보고 호소하고 스스로 표현한다. 레비나스의 타자는 마치 계시처럼 나의 이기적 자아 속으로 뚫고 들어올 수 있으며 나에게 계시되는 타자는 우리에게 도와줄 것을 요구하고 호소하는 벌거벗은 존재이다. 이때 그 호소는 나에게 행복을 주기보다 오히려 고통을 주는데 그에 따르면 이러한 타자를 영접하고 환대할 때 자신의 주체성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성이 살아난다고 말하며 주체가 타자의 출현을 통해서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타자에 대한 책임적인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타인을 환대하려고 하지만 레비나스는 그러한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타인은 나와 비대칭 관계 속에 놓여있으며 내가 타자를 이해한 방식대로 타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제공한다는 것은 타자를 나에게로 환원하는 것이다. 타자를 자신으로 계속 환원하면 내가 점점 타자 위에 군림할 수 있지만 그러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타자는 수용되거나 환원될 수 없으므로 절대적인 다름과 절대적인 타자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는 결코 자기에게로 환원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동일화시킬 수 없는 ‘무한의’ 존재다. 결국 그에게 있어 타자는 분석이나 비교되는 인식대상이 아니라 별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다운 삶이란 타인과 관계하는 삶,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며 타인의 삶을 깨닫는 삶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동성애와 같이 사회적 소수인 대상에 적용시켜볼 수 있다. 우리는 동성애에 대해서 보통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이성애는 옳고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그들을 자기 자신에게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서 발생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레비나스의 타자개념을 토대로 하여 그들을 하나의 인격적인 타자로 인정하며 어떠한 조건과 상관없이 나에게 나의 삶이 있듯이 그들에게는 고유한 그들의 삶이 있어 단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보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비나스는 주체가 타자의 출현을 통해서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타자에 대한 책임적인 주체로 설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인간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인간은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그들에게 이타심을 발휘해야할 때도 분명 있지만 나의 욕망을 포기하면서까지 타인을 우선시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은 자기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될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 우리사회에 적용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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