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와 철학자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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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상담치료와 철학자 하이데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마르틴 하이데거는 1889년 바덴주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농부 집안 출신의 어머니와 성당 지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술 창고를 지키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여섯 살이 되어 마르틴 하이데거는 장학금을 주선 받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학교를 졸업 한 뒤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겠다는 장학금에 대한 조건을 받고 공부를 계속 했다. 중등교육 과정을 마친 뒤, 하이데거는 약속대로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기 위해 예수회에 수련생으로 입회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하이데거는 예수회의 학자신부, 일반 신부가 되는 꿈을 포기했다. 2년간의 신학공부를 마치고 1911년부터 오로지 철학에 전념하기로 하여 철학 저서에 관심을 가지며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터에 뛰어 든다. 이후 사유, 인식, 심리 등에 관한 이념을 공부했다. 1917년 프로이센 장군의 딸인 엘프리데 페트리와 결혼을 한다. 1919년 그는 사강사가 되면서 후설의 연구조교가 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석하는 데에도 현상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후설의 논리 연구를 근원적으로 해석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이데거는 그가 전수받은 가톨릭 신앙과 논쟁적인 대결을 벌린다. 1923년에는 마르부르크 대학에 부교수로 초빙되어 1927년에는 후설이 편집하고 있는 잡지에 {존재와 시간}이 출간된다. 이 책으로 하루아침에 유명해 졌으며 후설의 후임 자리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다. 이 후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학문 연구의 과정에 발 디딘다. 1933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총장으로 선출 되며 공적인 강연에서 국가 사회주의적으로 들리는 입장들을 대변한다. 유대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임무가 성공하자 총장직을 그만 두었다. 그 후에 하이데거는 몇 권의 강연집과 강의록을 출간한다. 1976년 5월 26일 하이데거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2. 사상
하이데거는 근대 서양의 형이상학을 존재망각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철학을 그 동안 잊혀졌던 존재를 찾는 철학이라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을 존재의 철학이라고 한다. 인간은 특별히 현존재(Dasein)이며 인간은 존재와의 연관 속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인간을 현존재라고 할 때의 의도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종래의 인간규정을 동물이라는 생물적 차원에서 찾는다는 것에 반대하려는 데 있다. 그런 고전적인 정의는 인간의 본질을 인간이 아닌 인간 밖의 어떤 관점에서 찾는 것이나 마찬 가지라고 본다. 현존재인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해가는 존재자인데 이를 실존(Existenz)이라고 한다. 일상 속에서의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라고 규정한다. 세계는 우리가 본래부터 참여하고 깃들여 사는 주어진 조건이다. 현존재가 세계 속에 들어와 실존한다는 것은 행위 한다는 것은 세계 내 배려 방식이다. 현존재의 주의와 의식에 관하여서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숙련된 방식을 원초적으로 이해하는 삶을 살 뿐으로 인간은 도구적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환경으로서의 세계, 공동 존재, 공동 세계를 언급하며 타인과 함께하는 목적을 둔 삶을 중요시했다. 평균적인 일상 속에서 불안(=피투성의 상태)을 도피하기 위해 비 본래적인 방식의 깊이와 전체성이 결여된, 얄팍하고 산만한 삶은 퇴락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죽음에 관하여서는 현존재의 진정한 자기발견을 가능하게 해 주는 통로라고 파악한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죽음에 대한 사색이 삶의 가치를 깨우쳐 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의식은 타자와 자신을 위해 예사로 인생을 살지 말라는 자기 권유가 될 수 있다. 죽음과 삶에 대한 사유는 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삶만을 생각하는 것은 죽음에 비극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죽음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귀중하고 연약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충만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의식하고 수용한다.
3. 적용 가능한 문제
실존주의자 하이데거가 전하는 메시지는 존재의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장에서는 지구를 파멸로 이끄는 사건이 문명의 위세를 떨치는 인간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철학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인 것이다. 나는 하이데거가 던진 화두에 응답할만한 현대의 인간상은 ‘상호 주의자’ 라고 생각하며 현대사회의 리더와 추종자들에 관한 적용을 시켜보겠다. 상황에 따라 리더십의 기능이 다르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리더와 추종자는 모두 변하고 있다. 현대와 같은 엄청난 문화적 변화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긍정적인 미래로 인도해 줄 리더이다. 리더의 성공은 그의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뿐 아니라 추종자들이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지식 기반의 일터와 상호 주의자들의 등장이라는 변화된 환경에서 리더의 목표는 더 상호적인 리더, 즉 공동선에 대해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맥락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낯설음에 관하여 자아의 상실과 연관시켜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로 적용시켜볼 수 있다. 우리는 낯설음을 느낄 때 진정한 자기를 찾아 나서는 대신에 오히려 낯설음을 제거하려는 방법을 찾아내 현실 도피를 하고 만다. 하이데거의 입장으로 이런 우리의 태도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삶을 통해 낯설음을 제거하려는 현대인의 시도는 부정적으로 비춰질 것이다. 현대인은 아무것도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 무얼 먹고 무얼 입을까 무얼 읽을까 심지어 선거에서 누굴 찍을까 조차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따라 우리는 평균적인 삶을 지향하며 낯설음이 가져다주는 신선함을 느끼기도 전에 소외감부터 느껴버려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고 철저히 몰아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삶 속에서 빈말이 늘어난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한 채 누군가를 모방하고 확대해서 떠드는 빈말만이 오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즉,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는 것이다. 순간의 모면은 남들을 통해 극복 될지라도 자아의 몰락과 죽음만은 내가 맞이해야 할 현실이다. 그 불편한 깨달음은 하이데거의 입장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을 내 던져 보는 것, 몰락과 죽음이라고 여기는 불투명한 미래로 달려 나가보는 것의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때 현대적 삶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고 충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충고는 스스로의 자아를 두고 방황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 가능 하지만, ‘책임’에 관하여 빈말만을 내뱉는 리더들에게 잘 적용될 수 있다. 자리에 오르기 전 포부에 관하여 잡담이 아닌 당장 목 앞에 칼이 있는 사람처럼 죽음의 선구를 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3. 한계점
하이데거는 인간이 최대한의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사유의 차원에서 죽음을 향해 먼저 뛰어가 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인간이 타인과 함께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안전주의식 사고방식을 폄하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생존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양심, 정의감을 안전한 삶의 유지의 뒤편으로 밀어두기도 하며 실리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은 세계-내-존재이기 때문에 종교, 도덕을 부정해보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힘 있는 존재일 수 없다. 개인적 발전과 모험을 위해 파괴적 행동을 행한다면 사회의 안전한 틀은 깨지고 만다. 이 점에서 하이데거의 자가당착이 생기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