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신학 웨슬리의 선행 적은 총칭의 의인화와 성화의 관계 기독자의 완전의 의미 감리교 신학의 중 표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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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리교 신학 웨슬리의 선행 적은 총칭의 의인화와 성화의 관계 기독자의 완전의 의미 감리교 신학의 중 표준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웨슬리는 어거스틴의 원죄설을 받아들인 루터와 칼빈의 개신교 전통을 따라서 인간의 타락과 원죄를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의 파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형상의 부분적 회복이 강능함을 믿는다. 다시말해서 회개와 신앙 이전에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은총, 곧 선행적 은총을 믿는다.
이 선행적 은총은 자유의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유의지에 의해 인간은 구원의 은총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일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책임성(자유의지)는 펠라기우스적 신인협조설과 다르다.
중세신학을 지배한 펠라기우스적 자유의지설은 자연인으로 태어날때부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하지않았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기에 유아세례도 필요없다고 보았기때문이다.
하지만 웨슬리는 자연인의 원죄성과 부패성을 믿는다. 자유의지는 날때부터 본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행적 은총에 의해 회복됨을 믿는다. 의지의 능동적 참여가 아닌 수동적인 참여인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범위안에서의 협조설, 복음적 협동설인 것이다. 이를 가리켜 알미니우스라고 말한다. 이 알미니우스의 자유의지론은 칼빈늬 제한된속죄론을 하나님의 사랑에 입각하여 비판한다.
웨슬리는 칼빈의 이중예정론을 비판하고, 십자가를 통한 예정, 곧 그의 십자가를 믿는 자는 구원받도록 예정하였다는 만인 속죄론을 강조한다. 또한 선교적 사명을 위한 예정을 믿는다. 예를 들면, 사사, 선지자, 사도 등 선교적 사명을 위해 특별한 예정을 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구원에 관계된 일반적 예정을 비판한다. 또한 웨슬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 그 당시 유행했던 영국의 이신론을 비판하였는데,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시계제조업자로 생각하였다. 어거스틴처럼 웨슬리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안에서의 인간적 자유의지적 결단을 말한다.
-웨슬리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이에 대한 인간의 적응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은 영혼에 있어서의 은총의 첫 여명, 곧 웨슬리가 선행적 은총이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선행적 은총은 그의 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한편으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에게로 지향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있는 은총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이며 하나님을 용납 또는 배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웨슬리는 펠라기우스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원죄와 선행적 은총에 대한 두 교리로써 조화를 이루는데, 원죄로 인하여 자연적 인간은 “하나님께 죽었고”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그에게 응답할수 없게 되었는데, 선행적 은총을 통하여 응답하거나 또는 반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이러한 선행적 은총은 우리 속에 신앙을 용납하거나 또는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창조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선행적 은총은 “구원의 시작이요, 눈 멀고 무딘 마음, 즉 하나님과 그 하신 일을 전혀 모르는 마음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초기 단계”인 것이다. 이 선행적 은총은 구원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각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웨슬리는 “구원은 우리가 종종 말하는 생래의 양심, 더 적당하게 표현하여서 선ㅆ행적 은총에 의해 우리 영혼 속에 역사된것 전부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선행적 은총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행적 은총의 개념은 웨슬리의 인간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에서 선행적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고 철저하게 부패하여 인가자체로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버려,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있게 된 것이다. 웨슬리는 이러한 인간에게 예수그리스도의공로를 통한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이 인간의 양심과 자유의지를 부분적으로 회복시켰다고 본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양심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행적 은총이며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는 초자연적인 빛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복구된 자유의지를 어느정도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행적 은총은 인간이 의롭다함을 받기 이전에도 역사하는 은총이다. 즉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현실적으로 “단순히 자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실존적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할 수도 거부할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러한 선행적 은총의 개념은 구원을 위한 인간의 책임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데, 따라서 인간이 선행적 은총이 역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웨슬리는 인간이 구원을 못받는 것은 그가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은총을 활용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