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북한 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56년 절정에 달했던 권력투쟁은 소련과 중공의 개입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김일성이 당면한 최대의 시련
당의 재건
박헌영의 공판이 진행되고 사형이 집행된 시점은 또 한 차례의 숙청과 밀접한 연관
54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직전 김일성은 정부 관료와 공장지배인을 모아놓고 당내외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에 대한 비난: 관료주의 만연, 관리 및 기술 일꾼의 심각한 부족
도, 시, 군 당위원회에 격렬한 비난. 사고방식과 사업방식의 총체적 혁명, 생산문화 수립 요구. 이후 엄격한 책벌과 포상제로 강화된 사업규율은 실제 당 일꾼들의 사고와 생활에 깊이 스며듦.
1955년말 로동당 당원수는 1백만으로 급증. 그에 비해 유능한 일꾼 부족은 심각.
당 책임 일꾼에 대한 훈련은 점차 체계화; 야간 비정규과정으로 시와 구에 당 학교 설치. 상층에는 도당학교 설치. 이보다 한 단계 위에는 중앙당학교 설치.
전후 복구기 초기에는 인민들이 행정당국자에 대한 비판을 지상에 공개하는 제도 시행했으나 이후 자아비판의 과정을 전 인민에게 확대하면서 대중통제 무기로 사용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근본적인 계급문제에 몰두. 이에 따라 대중과 인텔리에 대한 정책에도 영향을 끼침. 해방 이후 북한 노동계급은 농민층과 견고한 통일전선 구축하여 인민정권 확립. 그러나 두 계급 모두 훌륭한 공산주의자가 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교의 내에 역설. 사회 내 모든 요소를 가능한 한 포용하는 통일전선전술이 통일을 완수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이라 선전한 반면 대중들에게 치열한 계급투쟁에 대해 끊임없이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