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해석학 교단별 예배와 타 종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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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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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성찬은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거행되었고, 큰 도시에서는 월 1회, 작은 마을에서는 연 4회 거행되었다. 성찬시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예식서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예식은 감리교 예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찬송을 사용했고, 특히 웨슬리의 찬송으로 한층 보완되었다. 감리교 예배에 영향을 주었던 요소로는 기도(개인, 가족, 공동체), 금식 기도, 애찬식, 야외 설교, 주일 아침과 오후에 있었던 주일 학교, 철야 기도, 감리교의 독특한 조직인 속회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감리교 예배에서 교제에 대한 독특한 분위기에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는 주일 학교에 변화가 있다. 오후 예배는 점차 사라지고 있고, 오전 모임은 어른 예배의 전반 부분에 참여하고, 중간에 퇴장하여 각자의 연령에 따라 모임을 갖는다. 월 1회는 ‘가족 예배’(Family Service or All Age Worship)로 퇴장하지 않고 끝까지 참여한다.
영국 감리교 대회에서 ‘감리교 예배서’(The Methodist Service Book, 1975)를 인준했는데, 주일 예배의 이름은 웨슬리가 사용했던 ‘The Sunday Service를 사용했다. 이 예배는 융통성 있는 예배 구조를 제시했으며, 고정된 순서와 자유로운 순서, 그리고 성찬 중심의 예전을 담고 있다. 성찬이 없는 예배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되어 있다. 찬송, 순결을 위한 기도, 죄의 고백, 사죄의 선언, 그 날의 기도, 구약성경이나 서신서 또는 둘다 봉독, 찬송, 복음서 봉독, 설교, 중보 기도, 주기도이다. 성찬이 있는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설교 후에 평화의 인사(때때로 겸손을 위한 기도), 떡과 잔을 나눔, 기도, 찬송, 축도, 파송이다.
2. 미국 감리교 예배의 특징
미국 감리교에서 사용된 예배 형식은 미국 감리교의 사회문화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 감리교보다 미국의 다른 교단과 흡사한 것이 많다. 존 웨슬리는 평생 영국 국교회의 목사직에서 떠나지 않았고 영국 국교회의 예배서인 ‘공동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사용했는데, 부분적으로 보완할 때도 기본 골격은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784년 미국에 있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300페이지 분량의 ‘북미 감리교인을 위한 주일 예배서’(The Sunday Service of the Methodists in North America with Other Occasional Services)를 보냈는데, 이것은 1662년판 ‘공동 기도서’(BCP)의 개정, 축소판이다. 더욱 특기할 만한 것은 예배서와 함께 찬송가를 보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미국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보낸 ‘북미의 감리교인을 위한 주일 예배서’는 1786년과 1790년에 재판되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 예배서는 웨슬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1792년 권징’(Discipline)에 실린 37페이지 분량의 ‘성례전 예배서’(Sacramental Services)로 대체되었다. 이 ‘성례전 예배서’에서는 아침 저녁 기도문, 시편, 연도(連 Litany : 기도의 한 형식으로 선창자가 외는 기도에 따라 회중이 제창하는 기도), 집도문(集文 collect : 미사나 교회의 기도에서 사회자가 일동을 대표하여 말하는 짤막한 기도문), 서신서 봉독 등이 삭제되었으나, 성례전, 결혼 예식, 장례식, 집사 장로 감독을 위한 임직식의 순서들은 웨슬리의 예배서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1844년 감리교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설교 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이 ‘성례전 예배서’라는 이름은 성례전을 거행할 때만 사용했다. 프란시스 애즈버리(Francis Asbury)는 개척자로서 예배 때마다 설교와 찬송으로 사람들을 모았는데, 개척민들 가운데 문맹인이 많아 복음송을 반복하여 부름으로써 복음의 확인과 회심 경험을 상기시켰다. 19세기 중엽, 매년 천막 집회가 열릴 때면 먼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참석 했고, 예배는 언제나 감정적으로 고양된 분위기였다. 가능하면 많은 회심자를 얻고자 하는 실용의 정신 때문에 역사적 유산이나 예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감리교의 사회 운동 성과 덕분에 1920년부터 1970년까지는 중산층 감리교인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고, 예배 음악에서 종전의 회중 찬송보다 높은 수준의 합창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다. 흑인 감리교회는 자발성, 리듬 음악, 부흥 운동 같은 회중의 적극적 참여를 지향한다.
2. 개혁교회 예배 (Worship of the Reformed Church)
개혁주의 예배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죄로 인해 무능력한 인간과의 만남의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혁주의 예배는 복음에 근거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실천하는 예배이다.
개혁주의 예배 신학을 소개하는 데 있어 다소 상반된 2가지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상전에서 이사야를 부르시고 그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며, 다른 한 면은 멜빈(H. Melville)이 쓴 「백경」(Moby Dick)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로 우뚝 솟은 높은 강단 앞에서 하나님RP 나아가고자 예배를 드리는 회중들의 모습이다. 단순히 보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구원받은 자들이 드리는 예배처럼 개혁주의 예배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임재하심과 주권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이 비록 백인 일색의 예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개혁주의와 장로교 예배의 역사적 흐름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이에 반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연약한 인간과의 만남이다.
칼뱅과 그 후예들은 ‘말씀의 선표’를 예배의 중심적인 자리에 두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 선포되어야 하며, 이러한 강조는 예배의 중심적인 자리라는 견지에서 볼 때 루터에게서 더욱 강조된 점이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다. 즉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불변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그분은 지혜와 힘과 의와 거룩하심과 선하심과 진실하신 인격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초기 제네바와 스코틀랜드의 개혁주의 예배가 언제나 예배의 시작 부분에서 ‘죄의 고백’(a general confession)이나 ‘참회의 시편’(penitential psalm) 순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자의 현주소를 깨닫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관심은 개혁주의 예배의 깊은 뿌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경외심을 보임과 동시에 지체함 없이 그의 범죄한 입술을 제하여 줄 것을 간구했으며,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을 헌신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듯이 말씀은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다. 그러나 다분히 환상적이고 구경거리고 전락해 버린 중세 가톨릭 미사에 대항한 개혁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화려한 예배의 장면들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개혁 교회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말씀의 중심이며 근원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교회사가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설교에 대한 개혁의 열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근세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추세가 예배를 하나의 종합 예술 작품처럼 취급하려는 듯하나 분명히 말해 예배는 ‘창조적인 예술 작품’이 아니다. 히슬롭(D.H Hislop)은 그의 책 ‘Our Heritage in Public Worship’ (공중 예배에서의 우리의 전통)에서 비유를 들어 말했다. 개혁주의 예배의 기본 틀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것’(upward)이라기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틀’(downward)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위로 향하는 예배는 예배의 초점을 예배드리는 예배자는 혹은 그의 감정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예배 받으시는 분께, 또한 예배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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