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등불이 켜지다고 한국시대의 감리교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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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세기의 서구가 지닌 문화적 특징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산업혁명이 더욱 가속화됨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다. 그럼으로 더욱 이익을 추구하려고 서구인들은 해외 진출로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제국주의 시대를 만들어 냈다.
둘째로 자본주의의 팽창과 새로운 사상들, 곧 다윈의 진화론, 헤겔의 변증법, 콩트의 실증주의 등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구인들이 낙관주의에 도취한 시대였다.
셋째로 18세기말부터 시작된 시민혁명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팽창해가는 시대였다.
이러한 모든 문화 변동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으로 믿고 이를 숭상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인본의의와 세속주의에 굴복할 종교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오히려 이때를 기해 복음주의적 각성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문화 변동에서 오는 위기를 극복하고 일찍이 없었던 일대부흥을 일으키게 되었다.
18세기 후반의 한국은 영조, 정조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한글을 통한 민중문화가 활발해졌으며, 재야의 양반층 속에서는 전통적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의 공리공론을 비판하고, 정치, 경제, 사회의 개혁을 뒷받침할 새로운 학문 곧 실학이 연구되었다. 특히 일부 실학자들은 천주교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새문화운동과 신진 사상세력의 성장이 무능한 보수적 지배층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억압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오면서 11세의 순조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왕이 힘이 없어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순조의 정사를 가로맡은 김 대비와 그의 추종세력은 서교를 뿌리 채 없애도록 명령했다. 이 때 천주교의 지도자인 이가환,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 등을 처형하고, 정약용, 정약전, 이치훈 등을 유배함으로써 신신세력과 서교가 일시에 몰락해버리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신유박해(1801)이다.
그 이후로 천주교는 거듭되는 박해속에서도 다시 살아났다. 1831년에는 “조선교구”를 설치하고 프랑스인 신부를 주교로 임명할 만큼 천주교는 많이 성장했다.
당시 어린 헌종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게 된 안동 김씨 순조는 비교적 천주교에 관대한 정책을 폈지만 보수적인 세력이 힐난하고 나서 우의정 이지연의 서학박멸 주장과 함께 기해박해(1839)가 시작된 것이다.
기해박해로 인해서 수천명이 투옥되고, 130여 명이 순교하였다. 여기에는 프랑스 신부 모방과 샤스땡, 그리고 한인 지도자 정하상과 우진길 등이 들어 있었다.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의 순교(1846)를 전후로도 많은 박해가 있었지만 신도수가 2만 3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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