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운동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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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애국계몽운동 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애국계몽운동’에 관한 논의
부정론 VS 긍정론
부정론 : 국가멸망의 위기에서 총을 들지 않은 소극적인 운동이었다.
EX) 박찬승 - ‘선실력 후독립론’은 국권회복운동으로서 성립될 수 없다.
주진오 - 애국계몽운동은 패배주의적이고 투항주의적이었다.
긍정론 : 일제 보호국체제하에서 실력양성에 의한 국권회복을 추구한
애국계몽운동은 당시로서 최선의 구국운동이었다.
EX) 신용하 - 민족의 역량을 증가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유영렬 - 민족독립운동의 장기적 기반을 조성한 점을 높이 평가함.
명칭에 관한 논의
목적으로 ‘애국운동’과 수단으로서의 ‘계몽운동’
애국계몽운동
당시 실력양성운동 즉 자강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이었다는 점을 들어 ‘자강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
자강운동
북한학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운동을 문화분야에서 민족 부르주아지의 제반 요구를 반영한 반침략 반봉건 운동으로 규정
애국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이 기본적으로 문화분야의 운동이므로 ‘문화운동’이란 용어가 적절하다고 주장
문화운동
구국운동이 의병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되었다는 전제 아래 의병운동은 ‘구국의병운동’, 계몽운동은’구국계몽운동’
구국계몽운동
‘민족’보다는 ‘민중’에게 개혁변혁의 기대를 두고 1904년에서 국권피탈까지의 여러 운동을 민중의 각성운동으로 파악
계몽운동
최근연구동향
최근 몇 년간 애국계몽운동의 연구는 인물과 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연구가 많은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애국계몽운동 연구의 결과나 선행연구나 상식적인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음.
기존연구와의 차별성이 찾아지지 않은 경우가 많음.
또한 애국계몽운동을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지적들이 나올 만큼 애국계몽운동의 일정한 한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을 위축 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유학을 수학하였으면서도 서구문물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이른바 개신유학자 계층과, 국내외에서 신교육을 받은 신 지식층이 주도.
이들 중에는 소수의 전통적인 명문벌족 출신들도 있었지만, 대개가 중하급관리나 재야의 유생 출신들. 또 신흥 상공업자들도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였음.
당시의 하부지배층에 속하던 이들은 본질적으로 기존체제의 변혁보다는 체제의 유지 아래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지향한 계층이었음.
독립협회운동의 전개는 비록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었으나, 일부 전통적인 지식인들에게는 문명개화의 필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개화사상에서 더 나아가 ‘문명개화’를 내세우게 되었는데, 바로 서구문물의 수용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조하였던 것.
문명개화론은 교육과 실업의 발전만이 근대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실력양성론으로 구체화 됨.
특히 ‘교육개발’이 ‘식산흥업’보다 현실적으로 중시되었기 때문에, 계몽운동은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운동의 형태를 띠기까지 했음.
문명 개화론과 아울러 계몽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를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이었다.
사회진화론은 19세기 후반 서구 사회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진행되면서 부르주아들이 그들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제국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된 논리.
사회진화론
계몽 운동가들은 사회진화론을 대체로 두 가지 입장에서 수용함.
하나는 사회진화론에 나타난 제국주의 침탈을 합리화시키는 근대지향적인 논리에 함몰된 결과 한국의 국권상실의 책임은 그동안 실력을 키워오지 않는 한국의 국민에게 있다는 식의 식민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
이와 같은 논리는 사회진화론을 사회 진보면에서만 수용하여 문명개화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입장. 사회진화론의 근대지향적인 논리, 곧 근대화에 집착하여 독립도 실력양성을 이룬 뒤에나 지켜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음.
바꾸어 말하면 독립을 유지할 수 없는 단계와 실력이라면, 일본의 지배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논리까지도 주장되었음.
사회진화론
반면에 사회진화론에서 진보보다는 경쟁 특히 국가나 민족 사이의 경쟁적인 측면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도 있었음.
이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을 생존경쟁의 결과 나타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침략행위가 만국공법과 보호, 평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자행되었음을 비난하고, 민족주의의 수립과 실력양성만이 제국주의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
그러나 이들은 서양문명이 갖고 있는 제국주의적인 성격은 비판하면서도 실제 일제의 침략 자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러일전쟁 때 서양의 침략을 일본이 막아냈다는 이유로 일본에 의해 자행된 침략을 묵과하는 모순을 보였음.
후에 점차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립되면서 일제의 ‘보호정치’에 대한 비판도 가능해졌다. 즉 일제가 내세운 동양평화론, 아시아 연대론 등을 비판 지적하기 시작.
사회진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