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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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내셔널리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국가의 공동체 이념을 강조하고 자신이 속한 민족을 구별하여 의식하며 독립과 통일, 발전을 도모하는 경향을 말한다. 우리말로는‘민족주의,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 무명전사(無名戰士)의 묘와 비, 그것만큼 근대 문화로서의 내셔널리즘을 완벽하게 표상하는 것은 없다(.......) 이들의 묘에는, 특정한 개인의 사체나 불사의 혼은 없다고 해도 역시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국민적 상상력이 가득 차 있다.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은 ‘국민’을 하나의 유기적인 신체로 상상한다. 프로이센의 농민 아무개, 작센의 장인 아무개, 바이에른의 공증인 아무개를 일괄해 ‘독일인’으로 상상한다. 그러기에 라인 강변의 누구누구가 ‘프랑스인’에게서 상처를 입으면, 프로이센에서도 작센에서도,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분개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간다. 추도의 의례는 그 소름끼치는 국민적 상상력과 깊이 연결돼 있다. 타자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바친 자들의 묘. 그것은 이미 개별적인 사자의 묘가 아니라, ‘우리’라는 관념, ‘국민’이라는 관념의 묘인 것이다.(중략)
‘나’는 유한하지만, ‘국가’나 ‘국민’은 무한하다. 따라서 ‘국가’나 ‘국민’을 위해 죽으면, 그 ‘나’는 불사의 존재가 된다. 근대 내셔널리즘이 만들어 낸 ‘국민’이라는 관념, 국토나 혈연의 연속성, 언어나 문화의 고유성과 같은 환상에 의해 구성되는 이 만만치 않은 관념은, 인간이 갖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불사의 욕망에 의해 지탱된다. 자신의 재산, 혈통, 문화를 영구히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내셔널리즘의 토대가 된다. 이 관념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이라는 숙명과 삶의 우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는 것이다. 혼자서 살고 혼자서 죽는다. 죽는 뒤는 무(無)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내셔널리즘에서 오는 현기증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려 있다.
(서경식,「죽음을 생각하는 날」,『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 59~62쪽)
㉯ 1887년 벨로루시(러시아제국 당시 백러시아)의 비테프스크(Vitebsk)에서 태어난 샤갈에겐 이렇다 할 만한 정치적 의미의 ‘튼튼한’ 조국은 없었다. 유대인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 러시아제국은 확실히 아니었고 샤갈이 한때 열정을 다 바쳤지만 그에게 걸맞은 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한 소비에트공화국 역시 아니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찾게 된 프랑스나 미국도 피난처일 뿐 ‘조국’은 아니었다. 그는 평생을 ‘여행객’ ‘세계인’으로 살다간 셈이다. 그러나 샤갈에겐 ‘조국’은 없었을망정 ‘마음의 고향’은 있었다. 바로 그가 태어난 비테프스크였다. 그는 파리에서 오래 살면서도 몇 점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화폭에 파리의 모습을 거의 담지 않았다. 미국의 모습은 더욱더 담을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눈으로 보았던 비테프스크의 향수어린 모습은 죽기 전까지 재현했다.
구부러진 골목길, 당장 무너질 듯한 통나무집들, 늘 시무룩한 하늘, 먼지와 악취......... 고향에서 어렸을 때 들었던 시와 노래, 친구들과 즐겼던 놀이, 아내가 된 벨라 로젠펠트와 나눴던 사랑을 에너지로 샤갈은 평생을 살았다. 샤갈의 유명한 그림들을 봐도 배경은 늘 백러시아의 작은 마을들이다.
위의 두 글이 국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위의 제시된 예문 (가) 가 바라보는 관점은 내셔널리즘의 본 뜻 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다. (가)의 두 번째 문단에서의 타자를 상상사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배제하며 그렇게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간다. 그리고 (가)의 세 번째 문단에서의 ’국가‘나’국민‘ 을 위해 죽으면, 그 ’나‘는 불사의 존재가 된다. 이 말은 즉, 기존의 내셔널리즘의 정의와는 다르게 국가, 민족과 같이 우리라는 소속감을 당연 시 하기 보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의 재산, 혈통, 문화를 영구히 남기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내셔널리즘을 발현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제시된 예문 (나)에서는 샤갈의 일화를 바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일단 샤갈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샤갈은 1887년 러시아 비테프스크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미술학교와 즈반체바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러시아를 떠나 베를린을 거쳐 파리에 정착했으며, 1941년부터 48년까지 한동안 나치를 피해 미국에 체류하기도 했지만, 주로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샤갈은 고향을 무척 그리워 하였기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주로 고향 러시아에 있는 유태인 마을의 풍경과 샤갈 개인의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의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다. 샤갈은 유대인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 러시아 제국과, 한 때 열정을 다 바쳤지만 그에게 걸맞은 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한 소비에트 공화국 역시 샤갈에겐 조국이 아니었다. 프랑스나 미국 또한 피난처일 뿐 자신의 조국은 아니었다. 이렇듯 샤갈은 국가에 대한 배신과 좌절감을 느끼며 튼튼한 조국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어릴 적 태어났던 향수가 있던 비테프스크만은 자기의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생각하는 국가, 조국이라는 개념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편안한 애정이 가는 곳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므로 샤갈에겐 자기의 국적이 속해져있는 나라를 조국이라 생각지 않고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생각했다.
2.자신의 경험 속에서 ‘나’ ‘우리’ ‘국가’의 관계가 일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았던 경우를 떠올려 보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