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문학사 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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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학과 문학사 고전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전주의는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고전주의, 르네상스시대의 고전주의, 17~18세기의 고전주의 증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난 문화 운동이다. 17~18세기 고전주의는 다른 고전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전주의들은 모두가 최상급의 작가와 작품을 본받아 고전들이 지닌 특질과 규범들을 본 따서 새로운 창작을 이루려는 지향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시대의 고전주의가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려는 숭배감을 기본으로 한 것임에 비해서 신고전주의는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거나 질서 있고 조화로운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고전을 직접적으로 모방하고 거기에 나타난 법칙을 준수해야 하는 차이가 있었다. 고전주의의 발흥에 직접적으로 계기를 제공한 것은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해 점화된 종교개혁인데 중세적인 유럽의 통일성을 해체하고 봉건적인 사회체제의 근간을 뒤흔들며 군주국가가 성립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이다. 16세기 말 프랑스는 민족국가의 성립과정에서, 귀족은 약체화하고, 신흥세력은 계몽된 군주들이 메웠다. 구체적으로 여러 차례의 전란과 프롱드 난은 귀족과 의회주의자들에게 패배를 주고 군주권을 둔 마자린은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특히 태양왕의 ‘위대한 세기’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국왕은 영락한 귀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적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즈루아 들로부터도 환영을 받는 입장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봉건시대의 사회질서 체제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절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귀족의 정신적 모범성이 필요했다. 절도와 조화를 중심적 미학으로 하는 고전주의는 이런 측면에서 절대주의시대의 문학 원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16세기에 귀족들이 누리던 문화를 17세기에는 신사들이 18세기에는 계몽주의의 운동 속에서 교양인의 이념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2. 고전주의시대의 철학과 문학이론
기독교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던 중세의 철학에서는 고전고대의 위대한 학자들을 존경할 것이 강제되었다. 물리학에 아르키메데스, 지리학에 프톨레마이오스, 의학에 히포크라테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는 최고의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권위가 점차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대체 되고 방법론에 대한 본질적 회의가 나타남에 변화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과거의 방식이 ‘이해가 아니라 기억’에 호소한다하고 설파한 것은 그 상황을 요약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것과 모든 부문에서 고전고대를 계승하고 경험과 이성에 의지해서 사물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과학 분야에서 그것을 대표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는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정치권력과 도덕을 구분하여 정치권력이 작용하는 양태를 분석, ‘권력은 그것을 차지하는 방법을 아는 자의 것이다’는 현실론을 제기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세상에 나온 것도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철학과 인문학에서 마르틴 루터의 ‘성서만이 신앙의 유일한 원천이다’는 생각은 종래 절대적이었던 교회의 권이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다. 고전주의 시대의 철학은 그 어느 시대보다 활발하게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된다. 과학에서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과 마찬가지로 베이컨,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은 근대 철학의 주춧돌을 정초하고 있었다. 다양한 성향을 지니고 있던 철학자들은 그 다양성 가운데서도 일정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 복잡하고 다기한 질문들 속에서 신학적 논리뿐만 아니라 고전고대의 철학에도 의문을 제기했으며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장을 던졌다. 자연과 인간의 정신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 같은 철학의 전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베이컨과 데카르트였다. 베이컨은 귀납법을 창안하여 경험이 인식의 유일한 경로라고 주장했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는 코기토의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철학이 개인의 자의식에 기초한 관찰 적 진리에서 출발해야 함을 주장했다. 특히 데카르트는 논리가 명쾌하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그가 수학의 방법에서 도출된 직관적, 연역적 추론을 철학의 방법으로 받아들인 데서 연원한 것으로 네 가지 규칙을 토대로 삼는다.
1.전적으로 확실하고 분명하게 인식될 수 없는 것을 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2.어려운 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하려면 이를 여러 개의 개별문제로 분해해야 한다.
3.사상을 체계화할 경우,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 즉 절대 확실한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4.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할 경우, 개별자들을 완벽하게 계산하고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누락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방법서설]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고전주의의 문학의 간결성, 명석성, 체계성 등의 범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의 다른 저작인 [정념론]은 정념을 육체에 토대를 둔 거친 충동으로 파악하고 이 충동이 이성과 의지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전주의 문학이론은 근본적으로 정치를 절대 우위에 놓았던 당시의 사회상황을 모르고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 시대의 문학은 국왕을 찬미하고 그를 광영스럽게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고전주의 문학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호레이스의 [시법]을 연구하여 그 내용을 규범화하고 있다. 고전주의가 받아들인 첫 번째 교의는 문학이 자연을 모방한다는 모방의 개념이다. 이것은 근대의 리얼리즘이나 고대의 모방론과 흡사하지만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 까닭은 고전주의 문학이론들이 지니고 있었던 자연의 개념이 다른 시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영원하고 불변적인 것이었다. 이때 자연의 개념 가운데서 핵심은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러운 것은 순전히 심리적인 것을 의미했고 모방은 인간적인 것의 모방을 의미했다.
아우얼바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문명과 대조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 루이 14세하의 프랑스인들은 대담하게 그들이 문화가 고대인들의 문화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본보기라 생각하고 이러한 견해를 유럽 전체에 부과하였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초시간적으로 인간적인 것이었다. 영원한 인간성은 역사의 미천하고 혼란된 소용돌이보다도 더 맑고 깨끗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인간성의 개념 안에 어떤 제약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로지 ‘커다란’ 정열만이 있을 수 있는 소재가 되었고 사랑 또한 당대의 생각에 최고의 아름다움에 맞는 형식으로만 표현될 수 있었다.
자기들의 문명을 자기들이 문학적 형식을 통해 보편타당한 전형으로, 영원히 인간적인 모범으로 표현하는 것, 이것이 고전주의 작가들이 시도한 것이었다. 문학은 세련이나 품위를 지닌 귀족들의 생활과 행동을 보여 주어야 했다. 고전주의에서 사실적인 묘사보다 인공적인, 사회적 관습으로 받아들여진 행위, 품위 있는 언행을 중시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것은 이성과 판단의 우위성이다. 고전주의자들에게 문학은 감성이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이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작가는 환상이나 공상, 감성의 유동에 좌우되지 않고 법칙과 규칙에 의지하고 그 지도에 따라야 했다.
고전주의 문학이론을 규범화하는 데서 보왈로의 기여는 결정적이었다. 그는 [작시법]에서 이성에 의지하는 시학의 보편이론을 확립하려고 했다. 그는 절대국가의 이념이 되고 있던 양식, 또는 공통감각의 이름으로 고전이론을 새롭게 소개했다. 그리고 적합성의 이론을 상세히 설명 하였는데 사람의 언행에 대한 적합한 묘사는 신분에 따라 나누어져 있고 묘사할 현실에 적합한 장르와 문체도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시가 즐거움 속에 가르친다는 호레이스의 문학 이론을 설파 하고 있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보왈로가 [작시법]에서 이룬 것을 정리하였는데 첫째 시 장르의 보편이론을 확립하려고 시도 한 것, 둘째 예술법칙들을 정확히 공식화해서 표현한 것, 셋째 장르 자체는 예술가의 임의적인 산물이 아니고 시작의 도구도 아니며 그 자체로 주어진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 것, 넷째 예술의 장르와 유형은 자연물들의 류와 종에 대응하는 것으로 본 것, 다섯째 장르의 형식은 그 자체 속에 대상 선택의 구조를 지닌다고 본 것 등이다. 보왈로는 희곡에서는 삼일치의 법칙, 서사시는 사건의 중간에서 시작하는 법칙, 문체는 각 장르에 따라 상중하의 세 가지 문체적용 법칙, 연애, 원한, 질투 같은 보편적 주제를 사용하라는 권고 등 장르에 따라 법칙을 제시했다. 보왈로 등을 위시해서 고전주의 비평가들이 정립한 규범들은 매우 세부적인 것이었다. 적합성이론은 예절과 같이 사회의 규범인 동시에 문학의 표현에서 지켜져야 할 규범으로 언급되었고, 삼일치 법칙은 고전주의 비평에서 가장 유명한 법칙인데, 연극에서 시간 장소 행동이 통일 되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그런데 고전주의에서 일정하게 왜곡되고 있었다. 시적정의의 법칙은 작품 가운데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과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그 선악에 따른 상벌을 작품이 끝나기 전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주의에서 보편적 인물유형이 탐구된 것도 비평의 주문과 관련되었다. 통일성의 원칙도 중세의 개방적인 형식에 대한 반발이 중요한 한 요인이기도 했으나 절대주의의 일사 분란한 국가체제 이념에서 비롯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다. 낭만주의에서 핵심적 개념이 되는 천재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천재가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논의의 필요성이 없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영국의 드라이든은 프랑스의 고전주의 이론을 영국에 소개하기도 했으나 수용이기 보다는 소개의 의미가 더 컸다.
3.고전주의 문학의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