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

 1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1
 2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2
 3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3
 4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4
 5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5
 6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6
 7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7
 8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8
 9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9
 10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10
 11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11
 12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12
 13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13
 14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1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태조 왕건(太祖 王建)에 의해 후삼국이 통일되면서(936년)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남북국 시대를 지나 후삼국에 이르는 한반도의 분열의 시대는 통합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고려 시대는 분열된 주민들을 재통합하여 민족통일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창작과 비평사, 1994, 45쪽
분열의 과정을 극복하고 통합의 길로 들어선 고려 왕조는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수용하면서 전(前)왕조의 역사를 정리하였으며 왕조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것은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 김종서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고려사』편찬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여 교훈을 삼는다는 유교적, 교훈적인 목적과 함께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고히 한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 저술된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제왕운기(帝王韻紀)』등의 역사서들은 현재에도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등의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것을 보았을 때 고려 시대의 역사 서술 활동은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고려 시대의 시기적 역사의식과 역사 서술
1. 고려 초기의 역사의식과 역사 서술
왕건에 의해 후삼국이 통합되면서 고려시대가 개막된다. 신라 말기에 중앙정권이 쇠약해지면서 지방의 세력가들이 성장하였다. 그들은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기반을 갖고 동시에 무력을 소유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중앙 정부에 대해 저항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조 왕건은 혼인 정책과 회유 정책, 무력의 사용 등을 통해 지방 세력을 흡수해 나갔으며 지방 세력과의 연합적인 고려 사회의 성격으로 인해 신라와는 다른 사회모습을 보이게 된다.
고려 초기는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 943년 고려 태조가 그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10가지의 유훈(遺訓). ①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었으니 불교를 잘 위할 것, ② 사사(寺社)의 쟁탈 남조(濫造)를 금할 것, ③ 왕위계승은 적자적손(嫡者嫡孫)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不肖)할 때에는 인망 있는 자가 대통을 이을 것, ④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배격할 것, ⑤ 서경(西京)을 중시할 것, ⑥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 등의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다루지 말 것, ⑦ 왕이 된 자는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여 민심을 얻을 것, ⑧ 차현(車峴) 이남 금강(錦江) 이외의 산형지세(山形地勢)는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 ⑨ 백관의 기록을 공평히 정해줄 것, ⑩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지금을 경계할 것 등이다.
5번의 ‘서경을 중시할 것’이라는 말은 북진 정책을 유념에 두고 한 말이다.
에서도 나타나듯이 북진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던 시기이다. 고려 사회의 목표는 고구려 영토의 회복이었으며 그로 인해 국호를 고려(高麗)라고 칭하고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승격하여 중시하였고 발해의 유민들을 대거 수용하게 된다. 고려의 전기는 민족의 대통일을 이룩하였다는 국가적 자부심이 강하게 표출되면서 이전의 신라 중심적인 삼국통일관을 배격하고 삼국의 대통합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역사학에서는 그 동안 소홀히 취급하였던 단군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북방계열의 역사를 중시하게 되었다. 박인호, 『한국사학사대요』, 이회, 1996, 38쪽
고려를 건국하면서 사관을 설치하고 역대의 실록을 편찬하면서 역사 편찬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북진정책과 관련하여 이시기에 쓰인 것이 『(구)삼국사』이다. 작자와 편찬연대가 분명하지 않고 현존하지고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김부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등이 편찬될 때 『삼국사(三國史)』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참고 문헌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상), 창작과 비평사, 1994
이우성, 강만길 공편, 『한국의 역사인식』, 창작과 비평사, 1977
박인호, 『한국사학사대요』, 이회, 1996
이범직, 김종연 저, 『한국인의 역사인식』, 청년사
신채호 저, 박인호 역, 『조선사 연구초』,동재, 2003
최영성, 「삼국사기의 역사의식」, 한국 유학사상
이기백,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 1회 한국고전연구 심포지엄
홍윤식, 「삼국유사에 있어 구삼국사의 제문제」, 한국사상사학회, 1987
『삼국사기』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