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시가 통속화 양상에 대한 연구 잡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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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 시가 통속화 양상에 대한 연구 잡가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잡가는 조선조 말에서 일제시대까지 상당히 성창된 시가 갈래이면서 아직까지 갈래적 특질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잡가가 이질적인 요소를 조화시킨 갈래라는 증좌가 된다. 따라서 잡가의 ‘멋스러움’은 단순히 복잡하다는 의미 외에 타갈래의 성과를 받아들여 다듬어내는 개방성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울·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12잡가를 필두로, 잡가는 지역의 민요권까지 침투하여 지역적 분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향유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한 도시지역이었다. 19세기 서울 지방에서 불리운 잡가에는 12잡가로 묶인 긴잡가인 8잡가와 잡잡가 선소리 휘모리잡가 등이 있었다.
잡가가 상·하층문하의 성과를 두루 흡수해 갈래적 성향이 복잡한 만큼 그 성격도 단일하게 포착되지 않는다. 하층의 음악에서 출발하였으면서 시조·가사와 같은 상층음악의 기교를 보탰는가 하면, 속화된 표현과 전아한 한문어투가 공존하기도 한다. 이글에서는 잡가의 개성이 시가갈래의 통속화 경향이라는 진행구도를 명백하게 보여준다는 데 착안하여, ‘통속성’을 주목하여 살필 것이다. 통속성은 진지함과 엄격함을 탈피한 가벼움, 향락을 위한 것, 수요창출에 가치를 두는 것, 소모적인 것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통속적인 예술은 세계인식에서 상투적 빈곤성을 보이고 문제를 제기한다기보다는 안가한 흥미위주의 내용으로 흐르게되어 결과적으로 수요층의 퇴영적·소극적 의식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즉 잡가의 ‘통속성’은 그 시기 향유층의 욕구를 담아내며,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변동기에 나름의 의의를 확보하였으리라는 것이다.
II. 조선후기 시가갈래의 개편과 통속화
17.8세기를 거치며, 기존의 시가갈래는 분화, 개편되면서 뚜렷한 변모상을 보이게 되었다. 18세기 여항의 유행가로 성창된 사설시조는 고급갈래의 분화·개편, 기층갈래(민요)와의 접합이라는 통속예술 산출의 한 방향을 보여 주며, 영향력을 확대해 간다.
상·하층문화의 간격이 좁아지는 일련의 변모상은 악곡의 변화, 담당층의 확대화 중심이동, 언어체계의 변화를 수반하는 거대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기존갈래가 개편되면서 고급에술과 기층예술과의 완고한 경계선이 점차로 옅어지는 지점에서 통속화 경향이 조심스럽게 부상하게 된다. 이러한 개편방향은, 신분과 계급을 가르는 경계선이 존재하기는 하나, 양 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세습귀족과 신흥중간계급의 연대로 통속예술을 창충하였던 서구 일반 예술사의 법칙과도 대응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러한 흐름은 19세기에 들어서며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개별갈래 간의 교융, 상·하층 문학 사이의 상호모방·상호영역 침투·갈래 간의 교섭이 진행되면서 상·하층 문학의 간격은 전례 없이 좁아지게 되었다.
상당한 기량을 가진 전문예인 이외에, 반전문적인 공장이들의 소박한 풍류방 묘사에서도 놀이 문화의 저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하루의 일을 마친 후 사랑방 혹은 변변치 않은 공청을 찾은 이들은 귀넘어로 익힌 가사나 시조가 한바퀴 돌면, 그들의 장기인 긴잡가 판을 치고, 파장에 이르러서는 의례 휘모리잡가로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19세기 말로 갈수록 갈래 간의 개방성은 증대되고 이에 따라 갈래담당층 간에도 고유영역이 침투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놀이는 사대부의 풍류문화 모방이라는 측면도 일부 있었으나, 호구지책의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놀이문화의 확산은 진전에 따른 필연적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기존의 예술갈래가 상업화의 구도에 서서히 편입되어 감에 따라 수용층의 욕구에 부응하려는 통속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통속화 양상은 시가갈래 뿐 아니라, 소설의 경우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듯하다. 잡가집의 대량발간과 음박화, 소설의 대량발간은 통속예술의 부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오나고하던 양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문화의 평준화를 이루어 가는 예술사의 방향을 여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들어 진행된 시가갈래의 통속화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에는 통속화의 기반과 그 결과에 대한 문제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보편이념인 유교적 세계관의 이완 즉 ’탈이념현상‘에 주목하였다. 탈이념의 원리는 형상을 추상적인 상징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리얼리즘의 형상창조 방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가갈래의 통속화는 리얼리티를 확보한 바탕 위에 진행된 것이라 하겠다. 당대인들의 욕망은 여러 층위로 나타난다. 흐드러진 풍류판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놀이문화에 동참하고픈 문화적 욕구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희화화·일탈된 성의 모습, 주변과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 애상적 정서의 노출은 퇴영적 모습의 일단이라 할 수도 있다. 이는 욕망의 긍정이 욕망의 무한긍정으로, 나아가 새로운 욕구창출을 위한 자극으로 이어지는 통속화의 부정적 양상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가갈래의 통속화 경향은 18세기에 단초를 드러내어 19세기 한말을 거치며 20세기 초에 이르는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니 만큼, 매 역사시기 동일한 양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접근방법과 해석도 달라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III. 잡가의 통속성
잡가가 조선후기 시가갈래 개편의 한 가운데 속하는 갈래인 만큼, 시가 갈래가 통속화되면서 이루어낸 성과를 이어받고 있다. 이행기문학 특유의 역동성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독자적 미의식에 의한 문학적 장치들을 급속히 매너리즘화하고, 상층문화의 전범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잡가는 이러한 계기들을 모두 싸안아 ‘향락을 위한 예술’ 로의 완성을 보게 된다. 잡가에서 보이는 특징적 면모로는 우선 의성어, 의태어의 빈번한 사용을 꼽을 수 있다.
가. 층암절벽상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 드리운 듯 이골 물이 수루루루룩 저골 물이 솰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