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실日本茶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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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다실日本茶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 다도는 중국 유학승이었던 승려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의 일본 다도는 12세기 역시 중국 유학승이었던 영서선사에 의해 비롯되었고 중국 선종의 정신이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
무라다주코 다케노조오에서 16세기 센리큐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통 속에서 여러 류파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중 센리큐 집안의 손자들에서 비롯된 류파가 현 일본 다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센리큐의 후사가 아닌 둘째 부인이 데리고온 아들인 소탄의 세 아들에게 이어진 三千家(샨센케)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센리큐 양아들의 3 손자들이 그 가업을 잇고 있는 것이다.
첫째 손자는 오모테 센케(表千家), 둘째 손자는 무샤노코지 센케(武者小路千家), 셋째 손자는 우라 센케(裏千家)라는 류파를 이루었는데, 그 중 20세기에 들어 경영마인드를 도입하고 세를 넓혀온 우라센케가 현재 일본 다도의 주류가 되었다.
석주류는 센리큐와 첫째 부인의 아들인 장남 도완이 고완한 류파로 센리큐의 다법 중 간소하고 심플한 다법을 계승한 것이 특징이다. 석주류의 박차 다법이란, 박차는 농차보다 비교적 간단한 다법으로 짙게 만든 차를 여럿이 돌아가면서 마시는 농차와 달리, 연한 말차를 각각 한 잔씩 손님에게 내는 다법으로 농차의 차회 분위기보다 좀 더 가벼우며 차를 내는 팽주와 손님의 간단한 대화도 허용이 된다.
근세 초기부터 성곽건축과 호화스러운 쇼인츠쿠리(書院造)양식의 저택 건축이 발전한 반면에 이와 정반대로 고담(枯淡)하며 한적(閑寂)한 모습을 다타내는 다시쓰(茶室)건축이 발전하게 된 것은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당시 상당히 호화스럽고 자극이 강하게 장식된 공간에서 위의(威儀)를 지키는 활동은 오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그 반동으로 거동이 자유스러우며 한적(閑寂)하고 온정(穩靜)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 요구되었다고 생각된다.
다도는 선종의 불승들에 의해 중국에서 들여온 차 마시는 습관이 발전된 것이며, 자시키(座敷:사랑방, 객실)공간안에 일정한 법칙에 따라 오카자리(御飾(り):장식)을 하는 방식은 무로마치시대의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때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쇼인다시쓰(書院茶室)건축이 사용되었다. 그 후 나라 지방의 무라타 슈코(村田珠光)에 의해 와비노차(わびの茶)가 시작되어 요조한(四半:다다미 4개 반)크기의 소안다시쯔(草庵茶室:초암다실)건축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슈코의 후계자인 센리큐(千利休)에 의하여 대성되었다. 센리큐 시대에는 다시쯔(茶室)의 크기가 더욱 축소되어 산조(三:다다미3개)또는 니조(二)의 작은 방이 사용되었다.
에도시대에는 코보리 엔슈(小堀遠州)에 의해서 그동안 쇠퇴되었던 쇼인다시쯔(書院茶室)건축이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코보리 엔슈가 만든 다이토쿠지(大德寺)에 있는 고호안(孤蓬庵)의 보센(忘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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