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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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의 역사인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양란 이후 조선후기에는 성리학적 가치관의 대안인 실학사상의 등장으로 역사인식에서도 조선전기와는 다른 관점이 나타났다. 역사학에서는 중국과 다른 한국의 고유문화와 전통을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역사연구에서도 객관성과 자주성이 강조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서가 편찬되었는데 사서를 주로 관찬으로 정리했던 조선전기와는 다르게 조선후기에서는 사찬의 역사편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조선 후기의 역사인식의 성격과 조선 후기의 역사인식의 한계와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2.본문
1)전통적 화이관의 극복
조선후기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는 화이관의 극복과 자아인식의 강화를 들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실학자 계열의 역사가에게서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화이관이란 송대 이후 중국의 사학인식에 있어서 강하게 드러나던 특징으로서, 이는 역사 서술에 있어서 중국과 이민족을 엄격히 구별하고 한족왕조의 방어를 도덕적 사명으로 강조하던 역사인식의 태도였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지리적 지식의 확대와 명청의 교체라는 대륙정세의 변동으로 인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전통적 화이관이 수정되기에 이르렀고, 이는 곧 조선후기의 역사 인식에서 자아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켜 주었던 것이다.
즉,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과 지리에 관한 지식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중심의 주자학적 우주관이 극복되기에 이르렀고,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중국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더불어 지리적 지식이 확대됨에 따라 지역 중심의 화이관을 극복해 나갔으며, 존화양이적 - 소화적 자존의식도 점차 극복되어 가고 있었고, 이와 같은 전통적 화이관의 극복은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적 역사 인식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자국사에 대한 독자적 인식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2)역사인식의 새로운 전개
조선후기 역사인식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특징으로는 정통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전개를 들 수 있다. 실학자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의 역사 연구자들이 정통론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자국사의 서술에 적용시킨 것은 전통적 화이관의 극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었다.
정통론이 역사인식의 이론으로 정립된 때는 송대에 이르러서였다. 정통론은 특히 남송의 주자에 이르러 성리학적 대의명분에 입각한 역사인식으로 제시되었다. 그는 세계사를 화와 이의 역사로 구분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관 내지 중화의식을 강하게 표현하였고 소속 왕조에 대한 의리를 강조했다. 주자의 정통론에서는 한족왕조의 중화적 측면과 한족국가에 대한 의리가 강조되고 있었다.
참고문헌
4. 참고문헌
ㆍ한국사연구회,〈한국사학사의 연구〉, 을유문화사, 1989
ㆍ조성을,〈조선후기 한국사학사〉, 한울아카데미, 2004
ㆍ허태용,〈조선후기 중화론과 역사인식〉, 아카넷, 2009
ㆍ조동걸,한영우,박찬승,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창작과 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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