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

 1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1
 2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2
 3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3
 4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4
 5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5
 6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6
 7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7
 8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8
 9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9
 10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10
 11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11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 리포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본명은 Maurice Polydore-Marie-Bernard Maeterlinck. 메테를링크 백작이라고도 함(1932∼ ).
1862∼1949. 벨기에의 상징파 시인, 극작가.
그의 운율적인 산문희곡들은 상징주의 연극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는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주로 프랑스의 문학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
1890년대에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명성을 얻었고, 1911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최초의 중요한 작품은 상징주의 전통에 따른 시집 〈온실 Serres chaudes〉(1899)이다. 메테를링크는 연극에서도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오렐리앙 마리뤼네 포에의 연출로 파리의 전위파 극장인 외브르 극장에서 상연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eas et Melisande〉(1892)는 상징주의 극의 걸작으로서 드뷔시의 섬세한 음악(1902)에 실려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옛날 이야기 같은 막연한 과거를 무대로 한 이 희곡은 슬픈 운명과 절망적인 우울함이 자아내는 저항할 수 없는 분위기를 전달한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산문으로 되어 있지만 19세기의 모든 시적 희곡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밖에도 그는 역사극 〈모나 바나 Monna Vanna〉(1902)를 비롯해 많은 희곡을 썼다. 그는 영국의 희곡, 특히 셰익스피어와 제임스 1세 때 극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차츰 상징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작품은 〈파랑새 LOiseau bleu〉(1908)뿐이었다. 아동극으로 창작한 이 환상적인 우화는 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190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이 감상적인 우화는 한때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 매력은 곧 사라졌고, 이 연극의 낙관주의는 다소 경박해 보인다. 그가 쓴 〈스틸몬데 시장 Le Bourgmestre de Stilmonde〉(1918)은 전시에 부도덕한 독일 장교의 지배를 받는 플랑드르의 문제를 탐구한 애국적인 희곡으로서 한동안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의 희곡들은 널리 번역되었고, 벨기에의 극작가들 가운데 전세계에서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산문작가이기도 했다. 철학적 염세주의와 자연계에 대한 관심을 뚜렷하게 뒤섞어놓은 그의 저서들은 1930년경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록 그리스도교 사상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신앙을 잃은 뒤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영혼불멸, 개인들 사이의 의사소통, 인간은 인생에서 부닥치는 불행에 어느 정도나 책임이 있는가 등의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또한 〈소박한 사람들의 보물 Le Tresor des humbles〉(1896)·〈지혜와 운명 La Sagesse et la destinee〉(1898)에서는 자신의 신비주의적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가장 널리 읽힌 그의 철학적 저서는 〈꿀벌의 생활 La Vie des abeilles〉(1901)·〈꽃들의 지혜 LIntelligence des fleurs〉(1907)였다.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과학서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비유나 우화도 아니다. 이 광범위한 에세이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기술하고 어떻게 하면 인류가 인간의 조건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메테를링크와 상징주의
배혜화(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
삶을 충실히 재현하여 그 한 조각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상징주의는 가시적 현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도 암시와 뉘앙스로 그 대상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자 했다.
간결하고 우수에 젖은 문체로 인생의 신비와 숙명을 프랑스어로 노래한 벨기에 상징주의 시인 메테를링크는 명료한 지성을 갖춘 철학자로서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심도 있게 다룬 철학서적도 여러 권 저술했다. 부조리한 인간조건에 대한 절망에서 야기된 불안을 고독과 침묵 속에서 명상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고자 하는 작품들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상징주의 기 법으로 교묘히 무대화하여 환상적인 내면극 theatre dInterieur을 전형화 했다. 인간의 심층의식 즉 영혼의 상태에 대한 형이상학적 갈망으로 이상주의와 정신세계를 추구한 것이다.
그의 초기 극작품 〈말렌 공주 La Princesse Maleine, 1889〉는 꼭두각시들을 위한 극 piece pour marionnettes이라 불렸다. 신비로운 숙명의 힘에 조정되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 극단 그림연극에 의해 우리나라에 초연되는 도 마찬가지이다. 메테를링크는 말이 없어 몹시 과묵한 사람 Le grand "taiseux"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답게, 그 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게 대사를 아꼈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한다기보다는 단조로운 톤으로 대사를 읊으며 느리게 움직인다. 몰개성적이고 반복적이다. 무대 장치 또한 사실성을 배제한다는 맥락에서 단순하고 추상화 되었으며, 조명과 음향 같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요소들은 강화되었다. 즉,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그 어떤 것도 무대에서 배제되고 억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