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기 古書記와 일본서기本書紀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당시의 고대 한일관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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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기 古書記와 일본서기本書紀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당시의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임나일본부설의 근간은 일본서기에 있다. 여기에 칠지도 명문, 광개토대왕릉 비문 그리고 중국 사료인 송서 왜국전이 방증 자료로써 거론된다. 이 자료들은 당대의 기록으로 신뢰성이 높은 제 1급 사료에 속한다. 그러면 이 사료들이 일본 학계에서 주장하는 야마토 정권이 고대의 한반도제국을 지배했다는 증거로 타당한지, 해당 사료들이 문제는 없는지, 사료해석에 자의적이고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은 가능한지 검증해 보기로 한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란 야마토정권이 가야제국을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좀 더 광범위한 의미로 접근하자면 가야는 물론 백제와 신라까지 아우르는 한반도이남 지역을 야마토 정권이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현재 일본서기에서 이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은 신공기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구황후[神功皇后]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7국(國)과 4읍(邑)을 점령하였고, 그뒤 임나(任那:伽倻)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 신라에 멸망하였다고 한다. 즉 일본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으며 중심기관이 가야에 두어진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거론되었다. 비문의 신묘년(391년) 기사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당시 왜국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남조(南朝)·송(宋)·제(齊)·양(梁) 나라의 역사기록에 나오는 왜왕의 책봉기사도 들고 있다. 여기에는 왜왕이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왜국왕(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 諸軍事倭國王)"이라는 관작(官爵)을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송에서는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왜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듯한 칭호를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의 칠지도(七支刀)도 왜의 군사적 우세와 한반도 남부 지배를 인정한 번국(蕃國) 백제가 야마토조정에 바친 것으로 해석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 2010년 10월 2일 검색
    우리가 여기서 보고자 하는 것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해 나타난 당시의 한일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므로 임나일본부설의 진위 여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다. 이 자체만으로 또한 하나의 큰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본질적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방향을 놓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임나일본부설은 어디까지나 이론이 아닌 하나의 학계적인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과거 일제 식민통치 당시 한국에 대한 통치의 당위성을 높이기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조되고 윤색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임나일본부란 명칭은 일본서기의 6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기록에는 빈번히 나타나지만 한국의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존재 여부조차 의심되었고 이에 대한 반론들이 제기되었다.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과거 한국의 삼국과 일본의 야마토 정권은 서로 간에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부터 군사적, 외교적으로 상호 연관성이 있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당시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던 임나일본부 문제는 한국고대사의 복원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사 및 동아시아 역사상(歷史像)의 재구축과 올바른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역사속의 한일관계, 동북아 역사재단, 2009년
    2. 고사기의 세계관을 통해 바라본 한일관계
    고사기는 천상의 세계인 다카아마노하라(高天原)와 천하의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 wrap container content slot03 葦原中國), 요모쓰쿠니(黃泉國), 네노카타스쿠니(根之堅州國), 가이진노쿠니(海神國)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 이외의 세계가 성립된 과정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이미 창생되어 있던 천지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천의 세계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다카아마노하라였다. 그 다카아마노하라의 생성의 영력으로 하늘과 땅의 신이 생성되었고, 구니(國) 여기서 國은 나라를 일컫는 것이 아닌 하나의 세계로서 보았을 때의 호칭이다.
    도 완성되게 되었다.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는 천시의 명을 받은 이자나키미코토, 이자나미노미코보 부부신에 의해 국토생성이 시작된다. 이는 후에 이자나미노미코토의 죽음으로 중단되었으나, 자손 오호쿠니누시노미카미(大國主神)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 일련의 작업은 다카아마노하라의 의도에 따라 진행된다. 이는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가 다카아마노하라의 질서에 의해서 통지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카아마노하라의 주재신인 아마테라스오호미카미(天照大御神)는 질서의 원리이면서 지고신이었기 때문에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가 다카아마하라의 관여로 성립된 것을 당위성으로 하여,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의 통치자를 천손으로 정하여 천강시켰다. 강림한 천손은 야마토에 동천해서 천황의 세계인 천하를 확립했다. 이 아마테라스오호카미의 6대손이 바로 진무(神武) 천황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과거 구전으로 이어오던 구전신화가 정치체제 안에서 문자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와 이어진다는 것이다. 떠돌던 이야기가 일종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체계화 되면서 정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와 역사가 하나로 연결되면, 역사는 신화에 의해 미화되고 또한 천손의 고귀성과 절대성, 왕권에 대한 강력한 복종이 수반되어진다.
    진무천황은 천황의 세계로서의 천하를 확립한다. 그 천하는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를 계승한 세계이나,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이 일종의 신화세계의 중심이었다면 야마토에 확립한 천하는 세계의 중심이다.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는 다카아마노하라와 우주의 기축을 이루면서 요모쓰쿠니, 네노카타스쿠니, 가이진노쿠니 등과 함께 구성되어진 천하의 중심인 반면, 야마토에 확립된 천하는 오호야시마쿠니(大八島國)와 신라, 백제로 구성되는 세계였다. 즉, 진무천황이 동천하여 야마토를 천하의 중심으로 하는 것과 동시에, 신화적인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 대신에 현실적인 오호야시마쿠니를 천하의 중심으로 위치시킨 것이다.
    한편 신라와 백제는 천신의 신탁으로 천하의 구성국이 되었다. 원래 천신의 탁선은 주우아이천황을 상대로 해서 행해졌으나 그것을 믿지 않았던 주주아이천황이 지벌을 받아 죽은 후, 진구황후가 다시 탁선을 청하자 “그 나라는 당신의 배 안에 계시는 황자께서 통치하실 나라이다”라고 태중의 오우진(應神)천황이 다스릴 것을 탁선하였다. 이어서 탁선한 신의 이름(神名)을 묻자 “이것은 아마테라스오호미카미의 뜻이시다. 또 소코쓰쓰노오(底筒男), 나카쓰쓰노오(中筒男), 우하쓰쓰노오(上筒男)의 삼주 대신이다” 라 탁선하였다. (권오엽, 광개토대왕비문과 일본의 기기신화, 2002, 보고사, p. 297)
    또한 그 탁선도 아마테라스오호미카미가 주도하였으므로, 백제와 신라를 주변국으로서 번국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호야사마쿠니를 중심으로 신라와 백제를 번국으로 하는 천하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는 천하가 어떤 식으로 달성되고, 현실 세계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관념적인 이야기이다. 또한 신라와 백제가 천황의 세계에 포함되어야 하는 관념의 실현이었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신라와 백제가 왜의 번국이 되는 근거가 되는 신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와 신라 이와에 고구려와 중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당시에 왜는 이러한 나라들과 이미 교류가 있었다. 하지만 고사기에는 그러한 사실이 기술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천황의 세계의 확립에 있어서 왜에게 필요한 나라는 백제와 신라뿐이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대국으로 천하관에 대한 확립이 강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오랑캐와 야만인들밖에 없다는 사상은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고사기의 세계에서 천하의 중심은 중국이 아닌 왜였다. 이러한 천하관은 중국에 대등하게 맞서자는 성격의 것이 아닌 왜의 독자적인 세계관이다. 이 안에서 신라와 백제는 왜의 복속국이며, 천황의 역사 속에 위치하므로 대국으로서의 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왜는 중국 왕조에 의해 책봉을 받으며 중국의 천하에 참입(參入)하였던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천하관과 충돌하여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전차로 고사기는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기술을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세계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이었고, 천하의 역사가 천황의 통치 하에서 일관적으로 성립되어 온 것을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중국이 상술되어 있으며, 몇 차례에 걸친 견수사나 견당사 파견, 한반도에서 있었던 당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고사기에서는 그러한 사실들을 발견 할 수 없다. 이는 고사기가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소세계적 천하사상에 의해 성립된 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는 일종의 필연적 전략이었다. 고사기는 신화와 역사의 접목이라는 방법으로 현실의 천황의 세계와 신화의 세계를 일체화 시켜 천황의 정통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편찬된 책으로, 일종의 기록서이기 보다는 합목적적 계획에 의한 관념서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때문에, 고사기의 천하에 등장하는 나라는 왜에 종속되어야 하는 나라에 한정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배제된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신라와 백제는 번국으로 등장하고, 중국은 생략된 것이다. 전게서, pp. 29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