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수행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선경을 찾아 입산하여 은거하며 수련하는 자들도 있었고, 도시에 거주하면서 생업을 꾸리다가 일시적으로 수련하기 위해 입산하는 자들도 있었다. 후자 가운데 청일전쟁 전후에 신종교로서 미국 종교인 개신교를 받아들인 자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평양의
양생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만복사의 구석에 위치한 방에서 외로이 지냈다. 혼인할 상대가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그는 부처와 저포놀이를 하였고, 거기에서 이겨서 그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게 되었다. 그 처녀는 왜적의 난 중에 부모와 생이별하고 정절을 지키고 있다가 혼인 시기가 되어 배필을
행동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할때, 우리 속에 있는 생명력이 활성화하고 극대화해 모든 얾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이른바‘기대지 않는 삶’,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3) ‘양생주’라는 제목은 1) ‘양생의 주’ 곧 ‘생명을 북돋우는 요체’라 풀 수도 있고 2)‘생주를 양함’
행동이 더러움과 질병의 원천이었고 그들을 희생양 삼아 깨끗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다름’은 더러움이었고 ‘같음’은 깨끗함이었다.
그러나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신앙과 민족을 가리지 않았고 그렇게 전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갔다. 이 병이 지체 높은 성직자를 피해가
행동과 실천을 추구하였던 학문이었다. 그런데 일상적 삶이란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것인지, 논리적 문맥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유학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낸다거나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갖추는 데이는 그다지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송대에 들어서 유학이 놓은 환경은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