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갑신 정변
1. 개화파와 갑신정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중국의 양명학, 훈고고증학 등 한학의 도입과 성리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대두되어 성리학은 조선 전통사회를 이끌어온 지배이념으로서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경제적 피폐와 관료의 극심한 횡포에 따른 민생고 문제에 대한 반
혁명의 과정 속에서 혁명 지도자의 역할은 비록 개인이기는 하지만 큰 의미를 가진다. 청교도혁명에서의 크롬웰, 프랑스혁명에서의 로베스피에르, 러시아혁명에서의 레닌은 모두 혁명가로 불려진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누가 혁명지도자일까?’ 모택동과 장개석은 대륙과 대만에서 각기 위대한 혁
경석, 유대치, 이윤원, 이유원, 등에 의해 더욱 발전하였다. 박규수는 북학파의 거두인 박지원의 손자로서 그 조부의 사상을 이어 문호개방을 주장하였고, 김정희 문하의 오경석은 중인신분의 역관으로 청에 왕래하며 외국 문물을 소개한 해국도지, 영환지략등의 서적을 구입하여 이를 널리 권장하였다
경우에 한하여 가감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항은 곧 약사의 가감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해외에서 접한 복지부 장관은 수행일정을 취소하고 중간에 급히 귀국하여 서둘러 ‘한약조제지침서 개정고시’를 발표하였다. 내용은 약사의 임의조제 처방은 가감할 수 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