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월 김구, 김규식이 북의 김일성, 김두봉에게 협상을 제의
*1948년 3월 남한단독선거 확정되자 김일성, 김두봉이 ‘조선통일과 민주주의 조선정부 수림에 관한 대책 연구 등등’을 토의할 협상을 수락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찬성하는 정치세력들이 연합하여 ’통일독립운도자협의회‘를 구성
Ⅰ. 통일운동세력
남북협상에서 김구·김규식, 김일성·김두봉 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통일독립이라는 최종목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커다란 성과였다. 반면에 단선․단정 반대와 외국군대 철퇴에 대한 구체적 방안들이 충분한 협의 없이, 또한 이남 지역 좌․우간의 통일전선에 대한
맥아더 동상 철거와 사수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55돌과 9월 28일 서울 수복 55돌에 즈음하여 철거를 주장하는 쪽과 사수를 주장하는 쪽은 급기야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사태는 악화일로에 있다. 9월 11일 충돌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미이어 오늘』, 2005년 9
독립동맹 역시 중국 내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두 세력이 상호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일제패망과 한국해방이 목전에 임박한 정세에서 중국 내 항일운동세력이 통일.단결함으로써 일제 패전에 기여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독립운동세력 통합의 기본적 제약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민족통합운동은 1910년대 이후로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이는 남북통일을 위한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바로 알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통일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