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는 가사가 문학사에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창작되고 향유된 가사의 발전기다. 연산군때부터 사화가 일어났고 당쟁의 실마리를 보이면서 사회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으나 정제된 시형을 갖춘 <상춘곡>에 이어서 서서히 발달한 가사문학은 송강 정철에 이르러 가사의 최고봉에 달하는 등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
이원익
작품 해제
문답가(問答歌) 계열의 가사로서 허전의 <고공가(雇工歌)>에 화답하는 형식의 작품이며 ‘고공답가(雇工答歌)’라고도 한다. 명신(名臣)이었던 이원익이 임진왜란을 겪은 후 지었다 하며, 순조 때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잡가(雜歌)>라는 노래책에 실려 전
그 것으로 가르침을 얻게 하는 가사도 포함한다.
<고공가(雇工歌)>,<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거사가(居士歌)>,<부녀가(婦女歌)>,<백화당가(百花堂歌)>, <勸善懲惡歌>와 <五倫歌>, <五道歌>, <孝友歌>, <浮浪者警告歌>, <明倫歌>, <鳳仙花歌>, <農夫歌>, <勸學歌>, <農家月令歌>, <勸農歌> 등이 있다.
고공가(雇工歌)
허전
작품해제
조선 중기 임진왜란 직후에 허전이 쓴 노래로, 국사(國事)를 한 집안의 농사일에 비유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고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관리들을 집안의 게으르고 어리석은 머슴에 빗대어 통렬히 비판한 작품이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글 전체가 우의적 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