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인민적 풍모와 숭고한 덕성’을 노래한, 곧 김일성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킨 시다. 북한의 문예당국자들도 인민을 감동시키는 시의 힘이, ‘그이는 우리의 태양 조선 인민의 수령 김일성장군’(차덕화,「수령」,1952)과 같은 경탄 구호조의 묘사와는 전혀 다른, 소박한 인간미의 표현에서
김일성 주석에 대한 흠모와 존경은 그 이상의 것이다. 92년 북송된 이인모 노인의 이야기는 이런 것과 관련해 우리에게 하나의 고려해야 할 점을 던져주고 있다.
\"... 만약 장군님(김주석을 존경하는 이들은 김주석을 이렇게 부르곤 한다)이 나를 조국광복의 성전으로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망국의 비
김일성이 처음 언급하고 김정일에 의해 확대되고 구체화되었다. 김일성은 1946년 8월 8일 “음악예술인들은 새 민주조선 건설에 적극 이바지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교시를 통하여 “음악은 민족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혁명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의 음악은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
사라지거나 몇몇 사람들만이 부른다면 음악정치를 통한 메시지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북한은 인민들 속에서 항상 노래가 불릴 수 있는 민요풍의 노동요의 창작을 장려한다.
② 위기 극복의 목적
북한은 음악정치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의 내용은 승리에 대한 것이며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