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가재연행일기』에 나타난 관점
(1) 『노가재연행일기』에 나타난 청나라에 대한 인식
① 청나라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을 시기
정묘호란 [丁卯胡亂](1627)과 병자호란 [丙子胡亂](1636~1637), 두 번의 호란으로 조선왕조의 청나라에 대한 불만심리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더해
연행록에 나타난 중국에 대한 관점
<노가재연행일기>
1. 김창업[金昌業, 1658~1721] 에 대한 소개
김창업(1658~1721)의 자는 대유(大有), 호는 가재(稼齋) 또는 노가재(老稼齋)이며, 본관은 안동으로, 조선후기의 세도가였던 안동김씨의 일원이었다. 증조부 청음(淸陰) 김상헌은 인조 때 유명한 척화 대신이
2) 조선 전기, 후기 사행문학의 특징
(1) 조선 전기 사행문학의 특징
조선 전기 사행문학은 해당 국가에서 견문한 정치와 역사, 문화, 풍속, 경관 등을 서술하는데 치중하였다. 특히 전기 사행문학은 견문한 바를 시로 써서 엮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사행원의 견문과 감상은 시를 통해 표현되었고, 이를
건정필담(乾淨筆談)>, <주해수용(籌解需用)>, <담헌연기(湛軒燕記)>, <임하경륜(林下經綸)>, <사서문의(四書問疑)>, <항전척독(抗傳尺牘)>, <삼경문변(三經問辨)>이 있다.
Ⅱ. 실학자(실학사상) 홍대용의 생애
홍대용은 1731년(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에서 아버지 홍력(洪櫟)과 청풍 김씨
필담과 왕복 편지를 정리하여 <건정동 회우록> 3권을 만들고 <해동시선> 4권을 완성한다. 37세가 되었을 때 서울로 이사를 와서 이덕무, 박제가 등 북학파를 이루게 된 이들과 자주 만난다. 43세가 되었을 때 그의 철학과 학문을 경주한 주해수용과 의산문답을 지었다. 47세부터 53세까지 태인현감과 영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