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920년대의 정우회
북풍회, 화요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 등 4개 사회주의 단체는 1925년 4월에 사단체합동위를 결성하였다. 1926년 이들은 민족주의자중 좌파와의 협동전선을 촉진할 것을 의안의 하나로 채택 하였다. 그러나 서울청년회의 사상단체인 전진회가 사단체에 대항하여 조선사회단체
농민운동
1. 소작인조합에서 농민조합으로 발전(26년 이후)
소작농 중심조직에서 자작빈농, 자작중농까지 포함했다. 지역적으로도 남부지방 뿐만 아니라 북부지방, 동해안지방에서도 활발히 조직되었다.
2. 조선농민총동맹 창립(27.9)
산하 농민단체 수 27년 160개소, 28년 307개소이다. 그러나 각
농민운동의 정세변화에 따라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연대하기도 하면서 운동의 발전을 이끌었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나 지주 주도의 농사개량단체 ․ 어용 소작인조합 ․ 초기 조선농민사운동 내부에는 지주 혹은 소농 중심적 농본주의, 농촌진흥운동 내부에는 파쇼적 농본주의,
조선농민사에서 펼친 귀농운동(歸農運動)과 1930년대 수원고등농림학교 한국학생들의 문맹퇴치운동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농촌계몽운동과 함께 한글보급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1928년 동아일보사가 창간 8주년 행사의 하나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려다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좌절되었고 이듬
농민의 대량 이농과 도시 노동자의 급증이라는 사회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일시적으로 식량수급을 왜곡시켜 1918년 일본 각지에서 쌀을 요구하는 도시민중의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국내에서 쌀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일제는 조선 쌀 수탈을 강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여 하였다. 이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