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저자 및 편찬 배경
건륭 연간의 『사고전서』편찬사업은 중앙집권적인 황실의 도서수집이라는 오랜 전통의 부활을 상징했다. 침체된 전통에 대하여 이와 같은 활성화가 이루어진 이유는 만주족 통치자와 한족 신하 사이의 관계상의 특징 때문이었다. 만주족은 민족적, 그리고 왕조 초기의 수십
), 사여(賜與) 등에 소용되었다. 조선시대의 진상에 대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만기요람(萬機要覽)』.『탁지지(度支志)』.『대전회통(大典會通)』.『공선정례(貢膳定例)』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이 종주국인 명나라에 보내는 방물(方物) 또는 공물에 대해서는 진헌(進獻)이라 하였고,
大典會通)》 등을 간행하여 법률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정치 기강을 수립하였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두어 행정권과 군사권을 분리시켰으며, 관복과 서민들의 의복제도를 개량하고 사치와 낭비를 억제하는 한편, 세제를 개혁하여 귀족과 상민의 차별 없이 세금을 징수했
大典>, 서일이 성통공완한 뒤 계시를 받고 지은〈회삼경 會三經>, 윤세복이 대종교의 수행방법을 적은〈삼법회통 三法會通>이 있다. 그리고 김교헌이 단군사적과 고유신교의 자취를 내외 문헌에서 뽑아 대종교의 역사를 밝힌〈신단실기 檀實記>가 있다.
어천절
단군 한배검께서는 삼천단부의 무리에
할 수 있다.
1. 학문적 성장과정
남명은 가정에서 독학으로 수학하다가 20세 무렵 成運․成守琛과 교유하면서 老․ 莊學에 심취하였다가 25세에 산사에서 {性理大典}을 읽었고, \"伊尹의 所志에 뜻을 두고 顔子의 所學을 배워, 나아감에 한 일이 있고 들어앉아서는 지킴이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