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와 인구의 축소, 외세이용 등의 요인으로 일부 사람들은 신라의 통일을 부인하기도 한다. 허나 신라의 통일이 불완전하다해도, 최초로 민족을 통일하여 하나의 국가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또한 통일 후, ‘일통삼한의식一統三韓意識’ 아래 고구려백제의 문화의 수용과 정치사회경제 등 사회 전
意識)으로 깊이 작용한 결과였다. 삼국통일의 주체적 당사국인 신라는 삼한(三韓)을 한 국가로 통합했다는 ‘일통삼한(一統三澣)’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삼한은 삼국을 상징했기 때문에 신라인은 고구려 백제가 같은 한족(韓族)이라는 동족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邊太, <三國統一의 民族史的 意味> (<
신라는 지리적 여건이 한반도 동남부에 치우쳐 있어, 상대적으로 정치적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성립시점이 늦다. 당항성을 확보하기 이전에는 고구려나 백제에 의존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랬던 신라가 ‘정치외교’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며, 기형적이나마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