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理)와 기(器)의 선후관계
주자의 형이상학은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골간으로 삼아 장횡거가 논한 ‘기’, 이정이 말한 형이상, 형이하 및 ‘리’와 ‘기’의 구분 등을 융합했다. 따라서 주자의 학문은 이전 도학자들의 학문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리(理)란
-도산서원-
퇴계 선생은 후학(後學)을 가르침에 있어 싫증을 내거나 귀찮아하지 않았으며, 친구처럼 대하여 끝내 스승으로 자처하지 않았다.
선비들이 멀리서 찾아와서 묻고 또 물으면, 그들의 정도의 깊이를 따라 일러주었으며, 반드시 뜻을 세우는 것[立志]으로 우선을 삼고, 주경(主敬)과 궁리(窮
主敬第僧演徒冊人共
造賢劫千佛流布第甘大現歲
佛比丘法頌所供養 황수영, 불탑과 불상, 세종대왕기념사업회,1974
"연가7년 기미년(己未年)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 동사(東寺)의주지 경(敬)과 그 제자 연(演)을 비롯한 사제 40명이 현겁천불(現劫千佛)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유포시키고자 했는데 이것
延嘉七年歲在己未,
高麗國樂良東寺,
主敬弟子僧演師徒人,
造賢劫千佛流布,
第廿九囙現義佛,
比丘供養
연가 7년 기미년 고려국 낙양(樂良: 평양)의 동사(東寺) 주지스님 경(敬)과 그 제자 승려 연(演)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제29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바뀌었다?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바뀌었다는 첫 번째 근거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延嘉七年歲在己未 高麗國樂良
東寺 主敬弟子僧演師徒卌人共
造賢劫千佛流布 …
“연가 7년 기미년 고려국 낙양의 동사 주지스님 경과 그 제자 연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