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道) 양계(兩界)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교주도(交州道, 지금의 영서지역)에 속하게 된다. 원주는 원종 10년(1269)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 충렬왕 17년(1290)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가 되고 34년(1308)에 원주목(原州牧)이 되어 중부 지역의 중심도시가 된다. 따라서 고려조 450년 동안은 중부방언이 원주
兩界萬里一覽之圖)>(규장각 소장) 하단에는 백두산이 인체의 머리요, 대령(大嶺 : 백두대간)이 척추요, 호남의 제주도와 영남의 대마도를 두 다리에 비유한 설명문이 보인다. 이러한 설명문은 모든 지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의 지도에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대택(大澤:천지)을 안고 있는 백두산을
1. 생애와 학문경향
한백겸은 자가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 본관은 청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훈신의 집안으로 내려오다 사람으로 전화한 집안이었다.
서경덕의 문인이었던 민순에게서 학문을 배운 한백겸은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듬해 부상(父喪)을 당하고 4년
Ⅰ. 개요
전북은 산업화시대에는 소외되어 지역의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지식기반사회의 등장은 전북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북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전북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慶尙道의 성립
『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三韓을 통합하고 비로소 東南海道部署使를 두었다고 하였으며, 그 후에 慶尙晋安東道, 慶尙州道, 慶尙道 등으로 각각 고쳤으나 그 개칭의 연대는 미상이다”고 하였다. 그 개칭의 연대에 관해서 『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대략 아래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