仕宦期)이다. 50세 때부터 70세까지의 만년기(晩年期)는 높은 관직을 끊임없이 사퇴하면서 고향에 돌아와 연구와 저술과 후학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던 강학기(講學期)이다.
2.1.1 수학기(修學期)
퇴계는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온계(溫溪)(현재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진사 이식(李埴)의 6남1녀 가운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아! 이 두 말이 내 병에 약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은 차갑다 못해 따끔따끔하며 뼈를 끊는 듯하니, 부득이하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 것이다.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은 몸 가까운 데서 지켜보기 때문이니 비록 매우 부득이하더
仕宦期(관직에 있던 시기), 50세부터 70세에 사망할 때까지의 강학기講學期(강의하며 학문에 침잠하던 시기)의 세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 볼 수 있다.
그의 성장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이는 어머니 밀양 박씨였다.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과부의 자식은 몇 백 배 더 힘써야 조소를 받
仕宦)을 단념하였으며, 33세 때 가서야 겨우 진사시에 급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23세 때 조모상, 27세 때 모친상, 30세 때 조부의 상을 당하는 등 가정적으로 불운이 연속되었는데, 32세 때 조부상을 마치고는 마침내 전라도 부안현 우반동에 복거(卜居)하여, 그곳에서 1673년(현종 14) 52세를 일기로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