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冥學派의 정치적 동향과 仁祖反正」, 『南冥學硏究論叢』,, 남명학연구원, 2011, p.101.
그럼에도 북인은 민생을 구하기 위해 은광(銀鑛)을 개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상업을 진흥하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후금(後金)의 부상(浮上) 속에서 화기도감을 세워 화포를 개발하는 등의
南冥學派)
남명학파는 남명(南冥)조식(曺植)과 그 문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이다. 이 학파는 실천을 중시하였으며, 퇴계학파와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다. 조식은 학문이란 아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반궁체험(反躬體驗)과 지경실행(持敬實行)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
조식 철학
1.조식의 시대의식
조식이 생존했던 시대(1501~1572)는 전후 50년 사이에 이른바 4대사화가 연이어 일어나 사기士氣가 극도로 몰락한, 유교의 덕치가 제대로 시행될 수 없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연산군 때 일어난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동조하지 않아 죽임을 당한 집현전 유
1. 레포트 저술 동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16세기를 대표하는 사림이다. 흔히 퇴계를 영남학파, 율곡을 기호학파의 대표라 하여 경쟁 관계로 여기는데, 이는 퇴계의 영남학파가 동인 정파로, 율곡의 기호학파가 서인 정파로 전환되어 정쟁을 한 데서 생긴 오해이다. 이들은 35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
남명 조식의 학문은 마음으로 도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치용(致用)과 실천을 앞세웠다. 시비를 강론하거나 변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학도를 위하여 경서를 풀이해 준 것은 없고, 다만 자신에게서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터득하게 하였다. 그 정신과 기풍이 사람을 격려하고 움직이는 점이 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