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譯院) 역관들의 중국어 학습 및 역과 한학서로서 이 책의 위치가 변함없이 공고했음을 알 수 있다. 사대와 교린 정책이 외교정책에 있어 국시(國是)였던 조선조에 있어서 사대 정책을 위한 중국어 학습은 언제나 중시되었다. 실질적인 중국어 학습에 있어 이 책은 언제나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
司譯院)·전의감(典醫監)의 생도(生徒)의 예에 따라, 액수(額數)에 구애됨이 없이 입속 시켜 전습(傳習)하도록 하소서.1. 그림에 힘써도 하나의 관직도 받지 못하오니, 비옵건대 녹관체아(祿官遞兒)를 주어 한결같이 오랫동안 근무한 자를 매년 서용하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61권, 15년( 1
司譯院)의 외국어 시험 과목에 위구르어 연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글 학자 3인 중에 위구르어가 능통한 학자도 있었다. 최근 신장의 위구르족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국 드라마를 열정적으로 시청한다. 드라마를 통해서 그들이 이해하는 한국인은 경제적으로 발달했으면서도 대인 관
司譯院)소속으로 중국어와 이문(吏文)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다.
이 되어서는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고죽 최경창(崔慶昌) 최경창(崔慶昌) : 1539~1583, 조선시대 시인으로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이이 · 송익
司譯院으로 개칭)을 두었고, 한어통사(漢語通事), 몽고어통사(蒙古語通事), 여진어통사(女眞語通事)를 양성했다. 고려 말에 노걸대와 박통사가 등장한 것이 이러한 제도적 바탕 위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면 그 당시 통역 양성 과정에 문학 작품이 제재로 활용되었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