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傷)하였다.
4. 연 구
1) 신라 때의 가요(歌謠)로 현재 이 노래의 내용은 전하지 않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에 그 유래만 실려 전한다. 즉,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朴堤上)이 볼모로 잡혀 있는 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하러 왜국에 갔다가 왕제(王弟)는 구하여 귀국시켰으나,
哀傷派)가 있었다. 격정을 노래한 작가로는 신기질(辛棄疾, 1104-1207)ㆍ육유(陸游, 1125-1210)를 비롯하여 악비ㆍ장원간(張元幹) 같은 이들이 있고, 애상을 노래한 작가로는 주돈유(朱敦儒, 1080?-1175?)를 비롯하여 섭몽득(葉夢得)같은 이들이 있다. 그러나 훨씬 뒤에도 유극장(劉克莊, 1187-1269) 같은 사인은 초기
哀傷)의 노래라든지, 임과 이별한 후 혼자 자는 방에서 떠나간 임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도 그 임을 못 잊어 사모하는 내용의 공규원모(空閨怨慕)를 읊은 노래, 시골에서의 한가로운 생활을 노래한 강호한정(江湖閑情)의 노래, 시골집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다룬 전가한거(田家閑居)의 노래, 또는
Ⅰ. 개요
고시조(古時調)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인(知人)간의 별리(別離)를 슬퍼하는 이별 애상(離別哀傷)의 노래라든지, 임과 이별한 후 혼자 자는 방에서 떠나간 임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도 그 임을 못 잊어 사모하는 내용의 공규 원모(空閨怨慕)를 읊은 노래, 시골에
哀傷의美 라고 보고 그 특징은 線에 있다고 하였다. 유종렬의 漢國 美論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한국의 미가 꾸밈에 치중하지 않는 자연의 미라고 하는 견해 이다. 그는 「李朝陶磁器의 特質」을 논하면서 그릇은 탄생한 것이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위대한 예술의 법칙 즉 자연에의 歸依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