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俗自何時 나라의 풍속이 어느 때부터
重男不重女 남자는 중히 여기고 여자는 중히 여기지 않았던가
一篇千字文 천자문 한편을
九歲學於字 9세에 서당에서 배웠네
當年記姓名 올해로 이름을 적고
旋占五言詩 오언시로 판을 치네
一隧同窓伴 한 무리의 동창이 따르며
謂吾慧寶明 나의 지혜가 밝다고
·색사대에 속한 적의(翟衣) ·대삼(大衫) 등이 원삼 ·활옷 ·당의 등으로 국속화(國俗化)되었고, 친의류는 단속곳 ·바지 또는 고쟁이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 등으로 다양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말 개화기에는 양복 ·양장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한복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 졌습니다.
國俗自何時 나라의 풍속이 어느 때부터
重男不重女 남자는 중히 여기고 여자는 중히 여기지 않았던가
一篇千字文 천자문 한편을
九歲學於字 9세에 서당에서 배웠네
當年記姓名 올해로 이름을 적고
旋占五言詩 오언시로 판을 치네
一隧同窓伴 한 무리의 동창이 따르며
謂吾慧寶明 나의 지혜가 밝다고
國俗)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조 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정례와 시의로써 그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③ 사계 예학은 계몽성과 실용성이 강한 예학이었다. 김장생은 「상례비요」의 집필 동기 를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열면 환하게 알아 갑자기 일을 당했을 때 실수하는 일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