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子監)의 한 분과(分科)로 인종 때 설치하였다. 대학(大學)이라고도 하며 정원은 300명으로, 문무관 5품 이상의 자손과 3품관의 증손에 한하여 입학할 자격을 주었다. 박사(博士) ·조교(助敎) 등 교관을 두어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삼례(三禮)》 《삼전춘추(三傳春秋)》 《효경(
Ⅰ.관학
1. 국자감(國子監)
국자감은 이념적으로는 군자에서 현인, 현인에서 성인에 도달시키는 인간의 완성을 그 교육 목적으로 하고, 실용적으로는 유위(有爲)의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 경영에 공헌할 유능한 관리의 양성을 그 교육 목적으로 하던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종 11년(992년) 개성에
국자감
(1). 국자감을 고려 최초의 중앙 최고의 교육기관으로는 볼 수 없는 이유.
태조가 서경에 학교의 설치에 앞서 수도 개성에 학교의 설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음.
성종 5년 7월 기록을 보면, 국자감을 설치하기 전 중앙에 어떠한 교육기관이 있었던 것이 분명함.
성종 8년(989년)에 ‘태학조교
Ⅰ. 개요
고려시대에 국자감, 향교, 사학 등과 같은 교육기관이 설립되고,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던 것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제도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시키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만일 고려시대에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유학교육이 교육적 전통
2) 천리장성 착공
거란족이 요를 건국하고 993년(성종 12)부터 1019년(현종 10)까지 총 3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였다. 이때 서희, 강감찬 등의 투쟁으로 모두 물리쳤다. 그 후 고려 정부는 북방민족의 남침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 초기부터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려 하였으